이 공간의 모든 이야기는 양심없는 무단 수집을 거부합니다. ⓒMuriel.
2011/06/12 (Sun)
(⇒외조부&외조모의 나가사키 방언은 역자의 판단에 따라 표준어로 번역합니다.
다소의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일이 아직 잊혀지지 않아서 조금 더 이 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반전...
그 녀석을 다시 보고 나서 나흘이 흘렀다.
당연한 걸 지도 모르겠지만 목은 꽤 좋아졌고
아직 흉터가 남아있긴 하지만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열도 내렸고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건 신체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었고
밤낮없이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언제 어디서 그 녀석이 모습을 드러낼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늘 주변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은 꽤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제대로 회사 생활을 할 수도 없어서
부모님이 대신 회사에 연락을 넣어 회사를 그만 두었다.
나는 빨래더미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감나무가 흔들리는 것에도
어쩌면 그 녀석이 아닐까 혼자 두려움에 떨었다.
S선생님이 올 때까지의 2주간이 나에게는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차마 나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은
떨고 있는 나를 억지로 차에 밀어 넣어 어딘가로 향했다.
아버지는 연신 "걱정 마라." "괜찮을 거다." 격려해 주었다.
나는 시간 감각도 잃고 차에서 이동하며 밤을 맞았다.
스무 살도 지나 창피한 일이지만
어머니에게 꼭 붙어서 오래간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
눈을 뜨자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
실제로는 하루 종일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차창 밖을 보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조금씩 낯익은 풍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가운데에 전철이 지나고 있다.
차는 나가사키에 도착해 있었다.
놀랐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 때문에 비행기나 신칸센을 피해
자동차를 이용해 이동해 준 것 같았다.
도중에 몇 번이고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운전을 계속해 온 아버지와
내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계속 함께 있어 준 어머니의 은혜는
평생이 걸려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외할머니 댁은 나가사키의 야나가와다.
야나가와에 도착해 언덕 아래에 차를 세우고 부모님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르러 갔다.
그 동안 나는 차 안에 혼자 있었다.
나를 두고 부모님이 가신 것은 허리가 좋지 않은 할머니가 드실 짐을 옮기는 걸 돕기 위해서였는데
나 스스로 "괜찮아. 다녀 와." 같은 소리를 지껄인 것은 정말로 그 녀석을 우습게 본 증거일 것이다.
오랜만에 잠도 푹 잤고 도쿄, 사이타마와 꽤 멀리 떨어진 나가사키에 왔다는 것이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던 건 지도 모른다.
차 뒷좌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통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극심한 아픔이었다.
목에 손을 대어 보자 뭔가 미끌했다.
피가 나고 있었다.
손끝에 묻은 피가 나를 거침없이 현실로 내던졌다.
이 때는 아프다던가 그 녀석이 가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먼저
"또야..."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앞섰다.
지긋지긋해서 눈물이 났다.
나쁜 일들이 쉴틈없이 일어나서 나는 의욕을 잃었다.
이 때는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으려 하기 시작했을 때라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작작 좀 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울었다.
부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차로 돌아왔지만
곧 패닉 상태가 되었다.
내가 목에서 피를 흘리며 뒷좌석에 쓰러져 울고 있었으니까.
"왜 그래!!"
"무슨 말이라도 해 봐!"
"T, 정신 차려야 한다!"
"여보. 어쩌면 좋죠..."
이 때는 나도 모르게 "당신들 시끄럽단 말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설명을 하라는 거야.
당신들은 아무 것도 못하는 주제에.. 닥치기나 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멋대로 나쁜 일에 휘말려 회사까지 관두고 사기까지 당할 뻔 했는데...
이런 나를 위해 여기저기 알아봐 주고 노력해 주신 분들인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내가 부끄럽다.
내 평생에 딱 한 번 아버지가 내 뺨을 때렸다.
아버지와 종종 말싸움은 했지만 여태껏 한 번도 맞은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옛날부터 아이를 절대 때리지 않겠다는 교육 방침을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단 한 마디.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과해라."
조용하지만 엄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왠지 진정이 되었다.
사실은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절망감조차 잊어 버렸다.
냉정을 되찾고 나서 사과를 드리고 나자
갑자기 마음이 굳건해 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격려해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에 울컥해서 또 다시 울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훨씬 더 심약한 놈이었나 보다.
S선생님의 집(겸 절)에 도착하자 갑자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기보다는 내가 혼자 안심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문을 잠그고 돌길이 깔린 좁은 길을 빠져나가자 초로의 남성이 맞이해 주었다.
그러고보니 S선생님의 집에는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분명 외할머니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들어가자 6평 정도의 불간이 있었다.
S선생님은 내 기억 그대로 불상 앞에 깔린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천천히 내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외조부&외조모의 나가사키 방언은 역자의 판단에 따라 표준어로 번역합니다.
다소의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할머니: "T야, 이젠 괜찮다. S선생님이 봐 주실 게야."
S선생님: "오랜만이로구나. 다 컸네. 세월 참 빠르구나."
외할머니: "S선생님, T는 괜찮을까요?"
외할아버지: "괜찮다니까. 이제 금방 왔는데 S선생님이 어떻게 아시겠어?"
외할머니: "당신은 좀 잠자코 있어요. 나는 심장이 떨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어째서일까....
S선생님 앞에 왔을 뿐인데 그 때까지 어쩔 줄을 몰라 하시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침착을 되찾으셨다.
부모님은 이미 정신적&신체적 한계에 다다르셨는지
외할아버지가 "많이 힘들었지? 뒤는 S선생님이 잘 봐 주실테니까 옆 방에 가서 쉬거라."하는 말을 따르셨다.
"그럼 T. 이 쪽으로 오렴."
S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나는 S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그러면 I씨(외조부&외조모)도 옆 방에서 쉬고 계시지요. T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뒤는 저에게 맡기시고 제가 됐다고 말할 때까지 이 방에 오셔서는 안 됩니다."
"S선생님. 부디 T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T야. 걱정 말거라. S선생님이 잘 봐 주실 게야. 선생님이 하시는 말 잘 듣고. 알겠지?"
다시 한 번 S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리고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S선생님은 더욱 다가오라고 말씀하시고는
거의 무릎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았다.
내 손을 잡고 잠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온화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왠지 나쁜 짓을 저지르고 혼이 나지 않을까 부모님의 안색을 살피는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눈 앞의 나보다도 작은 체구에 힘도 약한 할머니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S선생님: "...어쩌면 좋을까."
나: "......"
S선생님: "T. 무섭니?"
나: "...네."
S선생님: "그렇겠지. 이대로 계속 둘 수는 없겠지."
나: "저기..."
S선생님: "앗. 괜찮아. 혼잣말이었단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하나도 안 괜찮잖아!!
나는 갑자기 참을 수가 없어져서 선생님께 투덜대고 말았다.
정말 나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나: "저는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빨리 어떻게든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대체 뭡니까?
왜 그 녀석이 나에게 들러붙어 있는 겁니까?
이젠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S선생님: "T군..."
나: "애시당초 제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라구요!
심령 스팟 같은 곳에 가기는 했지만 나만 간 것도 아니고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긴 겁니까?
거울 앞에서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상관이 있는 겁니까?
정말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구요!!
진짜 열받아서 참을 수가 없네!"
「ドォ~ドォルルシッテ」
'도오~~ 도오르르싯테'
「ドォ~ドォルル」「チルシッテ」
'도~~도오르르' '치르싯테'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ドォ~。 シッテドォ~シッテ」
'도오~~. 싯테도오~~싯테'
왼쪽 귀에 앵무새나 잉꼬처럼 높고 억양이 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도오시테'라고 반복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나는 S선생님의 눈을 보고 있었고 S선생님은 내 눈을 보고 있었다.
다만 온화했던 S선생님의 얼굴이 무표정해진 것 같았다.
내 왼쪽 시야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힐끔힐끔 보였으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왼쪽을 돌아보았다.
목에서 뜨뜻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 녀석이 서 있었다.
몸을 ㄱ자로 굽혀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여기는 절인데...
눈 앞에는 S 선생님이 있는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1주일 전에 봤던 그대로였다.
그 녀석의 얼굴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올빼미처럼 조금씩 고개를 움직이며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ドォシッテ? ドォシッテ? ドォシッテ? ドォシッテ?」
'도오싯테?? 도오싯테?? 도오싯테?? 도오싯테??'
(왜애?? 왜애?? 왜애?? 왜애??)
앵무새같은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분명... 하야시도 이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나와 같은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녀석이 손을 움직여
얼굴에 붙어 있던 부적같은 것을 천천히 들추기 시작했다.
봐서는 안 돼!!!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 녀석의 턱이 보일 것만 같았다.
마음 속에서는 '그만 해!! 그 이상 들추지 마!!'하고 외치고 있었지만
입에서는 "으헉...컥..." 이런 한심한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안 돼!! 그만!!!
"짝!!"
나는 튀어 올랐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짝!' 소리와 함께 나는 튀어 올랐다.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서 쓰러질 뻔 했지만
뒤를 향해 바로 달려 나갔다.
내 몸이 멋대로 그렇게 움직였다.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달리지는 못했다.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뛰어서 벽에 머리를 부딪쳤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는데도...
그만큼 나는 경황이 없었다.
눈에 피가 들어가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더듬어 출구를 찾았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전혀 다른 방향만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은 가지 못한다!"
갑자기 S선생님이 크게 외쳤다.
다른 방에 있던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말한 건지
나를 향해 말한 건 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는 내 움직임을 멈추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굳었다.
불간으로 들어오려 하는 부모님과 외조부모님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잠깐의 시간을 두고 S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T. 미안해. 무서웠지? 이젠 괜찮으니까 이 쪽으로 돌아오렴.
괜찮으니 I씨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피를 닦으며 S 선생님 앞으로 돌아가자 선생님이 손수건을 건넸다.
향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냄새가 났다.
그 때서야 아까의 그 소리는 S 선생님의 손뼉 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T. 보였지? 들렸니?"
"보이긴 했지만.. 계속 '왜애?'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S선생님의 얼굴은 평소처럼 온화해져 있었다.
"그렇구나. 왜애? 하고 물었구나. 무슨 말이라고 생각하니?"
전혀 모르겠다.
"네?? 음... 모르겠습니다."
"T는 아까 그게 무서웠니?"
"무섭...습니다."
"뭐가 무서웠니?"
"그야... 평범하지 않고... 귀신이고..."
내 뇌는 이미 사고 능력의 한계를 넘어섰다.
S선생님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건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치만 아무 짓도 안 했잖니?"
"아뇨. 목에서 피도 났고. 게다가 이상한 부적 같은 걸 들추려고도 했고...."
"그랬지.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
"......"
"어렵지..."
"저기..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
"괜찮단다."
S선생님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었다.
비유를 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는 지도 모른다.
우선 그 녀석은 유령이나 귀신이라 불리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악령이냐 단정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하면
S선생님은 확언할 수 없다고 했다.
명백이 질이 나쁜 부류에 들기는 하지만 S선생님은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 일어난 일은 어떻게 된 거냐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악의는 없지만 너무 강하면 이렇게 되는 거란다.
저 사람은 계속 너무도 외로웠던 거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만지고 싶어. 봐 줬으면 좋겠어.
내 존재를 느껴 줘. 알아 줘.
계속 그렇게 바라 왔던 거지."
"T군은 말이야. 잘 모를 지도 모르겠지만
따스한 곳에 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생각해 주는 T를 보고
저 사람은 '좋겠다... 기쁘겠다...'하고 부러워했을 거야.
그래서 자기를 알아차려 준 게 너무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게 아닐까."
그렇지만 T는 저 사람에 비하면 몹시 약해.
그러니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고 몸이 반응을 하는 거지."
S선생님은 마치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어려운 말을 피하며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몰랐다.
그 녀석은 틀림없는 악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S선생님이 쫓아주시면 그걸로 끝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S선생님은 그 녀석을 감싸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T.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떻게든 해 줄게."
그 한마디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
아... 이젠 됐다...
끝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S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평생 잊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생김새가 무섭거나
내가 모르는 것이라고 해도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렴."
S선생님은 독경을 하기 시작했다.
퇴마를 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 녀석이 성불할 수 있도록.
이마는 찢어지고 목의 상처는 더 커져서 아팠지만
그 날 밤은 정말로 푹 잘 수 있었다.
이튿 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도 S선생님은 이미 아침 불공까지 마친 상태였다.
"잘 잤니? 그럼 세수하고 아침 먹으렴.
식사가 끝나면 본산(本山)에 갈 테니까."
S선생님이 속해 있는 종파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역사가 있고
신도와 수행자도 전국에 퍼져 있다.
가르침은 같지만 지리적 문제로 동(東)과 서(西) 각각 본산이 있다.
내가 간 곳은 서의 본산.
당분간 본산에서 지내며 내가 갖고 있는 덕을 쌓는 일과
그 녀석이 조금이라도 빨리 성불할 수 있도록 공양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가장 기뻐한 건 외할머니였다.
아버지는 아직도 완전히 믿지는 못한 것 같았다.
결국 내가 "괜찮아. 다녀 올게." 하고 말하자 반대하지 않으셨다.
본산에 도착하자 젊은 사람이 마중을 나와서 S선생님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본당 깊은 곳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본산의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S선생님은 굉장한 사람이라
본인만 원한다면 훨씬 더 높은 지위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당분간 본산에서 지내며
손님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했다.
그 곳에서 내가 정말 행운아라는 것을 실감했다.
벌써 40년 동안 계속 뱀의 원념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자.
친척이 모두 저주를 받아 몰락해서 홀로 남겨졌지만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꽤 훌륭한 선비 가문의 후예인 사람 등등.
나보다도 훨씬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이 있다는 걸 몰랐다.
엄격한 생활을 때문인지 장소 때문인지 S선생님의 이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포감은 꽤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문득 그 녀석이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겁에 질리기도 했다.)
본산에서 지내고 1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S선생님이 찾아 왔다.
"어머나. 꽤 많이 좋아진 것 같구나."
"네.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 이후로 본 적 있니?"
"아니오. 한 번도... 아마 성불해서 어딘가로 가 버린 게 아닐까요?
여기는 본산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단다."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어머. 미안하구나. 또 겁을 준 모양이구나.
그렇지만 T. 이 곳에는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어.
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도와 주는 게 우리들이 할 일이야."
S선생님의 그 말 속에는 그 녀석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T. 조금 더 여기에서 지내면서 공부하렴. 모처럼이니까."
나는 S선생님의 말에 따랐다.
그 때 일이 아직 잊혀지지 않아서 조금 더 이 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 동안은 짧게 느껴지지만
뭐랄까.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좋았다.
그렇게 결국 3개월이나 눌러 앉게 되었다.
그 동안 S선생님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역시 3개월이나 속세와 멀어져 있으니
뭔가 공허한 마음이 점점 강해 지고 있었다.
2개월만에 S 선생님이 찾아와서 겨우 본산에서의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지금껏 신세를 진 분들에게 한 명 한 명씩 감사 인사를 드리고
S선생님과 함께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 있던 S선생님이 없었다.
어라?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약간 뒤에 서 있었다.
'걸음이 좀 빨랐나?' 생각하며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더니
선생님은 온화한 얼굴로 "T. 돌아가지 말고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어떠니?' 하고 물었다.
사실은 S선생님에게 인정받은 기분이 들어 조금 기뻤다.
"아니오. 저는 여기 계신 분들처럼은 못 하는걸요.
정말로 다들 훌륭한 분이신 것 같아요.
흉내도 못 내겠는걸요."
쑥스러워하며 그렇게 대답하자
"그게 아니라 아직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아."
"네?"
"아직 남아 있어서."
또 다시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결국 본산을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다시 두 달이 지난 후였다.
5개월 동안이나 눌러 앉아 있었다.
"아마 이젠 괜찮을 것 같지만 당분간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렴."
그 녀석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숨어있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길었던 본산 생활이 끝나고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다.
혼자 지내던 아파트는 어머니가 퇴거 수속을 밟아 주어서
사이타마의 집에 가 보니 내 짐이 다 옮겨져 있었다.
어머니가 말해 주기를
아파트 방 문을 열었을 때 무언가를 태운 냄새가 나고
방 한 가운데 바닥에는 조그만 벌레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너무 무서워서 그 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튿날 어쩔수 없이 마음을 굳게 먹고 문을 열었더니
냄새는 남아 있었지만 벌레는 사라진 상태였다.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내가 그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이타마의 집에 돌아가 약 반 년만에 휴대전화를 보자 엄청난 건수의 착신 이력과
문자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게 OO였다.
녀석은 녀석 나름대로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자책을 했는지 사죄와 함께
이렇게 하면 좋다던가 이런 사람이 있다던가
꾸준히 연락을 취해 왔던 모양이다.
OO가 집에 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OO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가 떠들썩했다.
OO는 혀가 풀렸는지 무슨 말을 하는 지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 미팅을 하며 놀고 자빠져 있었다.
우선 전화를 끊고 '죽여버린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남인 거다.
이튿 날 OO에게서 '사과하고 싶으니 시간을 내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밤이 되자 OO가 집까지 왔다.
일부러 먼 곳까지 와 준 걸 보니
꽤나 후회와 반성을 한 모양이다.
현관을 열고 OO를 보자마자 두 방 날려 줬다.
첫 번째는 녀석의 자책을 덜어주기 위해.
두 번째는 미팅같은 데 나가서 나를 열받게 한 것에 대해.
말로 용서받는 것보다 맞아서 용서받는 게 더 후련한 경우도 있다.
두 번째는 내 개인적인 분노 때문이지만.
OO에게 그 동안의 경위를 상세히 이야기하고
그 날 밤은 둘이서 흥분하기도 하고 무서움에 떨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OO에게 그 날 밤 이후의 일에 대해 들었다.
그 날 밤 하야시는 몹시 이상한 상태였다고 한다.
하야시의 차에서 친구와 함께 대기하던 OO는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뒷 좌석에 올라 탄 하야시의 태도는 장난이 아니어서
차를 출발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반항하거나 늑장을 부리면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를 정도였어."
OO는 차가 우리 집에서 멀어져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는 신호에 걸렸을 때 도망쳤다.
"하야시가 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웃기도 하고 덜덜 떨기도 하고
'나는 아니야' '그런 거 안 해' 그런 말들을 해서 무서웠다구."
그 녀석이 무언가를 속삭이는 모습이 떠올라서 힘들었다.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건 단순히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근성없이 굴어서 미안해."
내가 OO이었어도 피하고 싶었을 거다.
그 후 하야시가 어떻게 되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OO도 그 일로 꽤 화가 나서 하야시를 소개해 준 친구를 추궁했다고 한다.
사실 하야시는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했고
그 친구도 용돈 벌이 겸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했던 거라고 한다.
"그래도 내가 흠씬 두들겨 패 놨으니까 용서해 줘."
그리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은 총동원해 보았지만
주변에 이런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후 나는 S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매달 한 번씩 S선생님을 방문했다.
첫 해는 매달. 그 다음 해는 3개월에 한 번.
사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OO도 별 이유없이 우리집에 오는 일이 많아졌다.
S선생님을 만나러 가기 전과 만나고 난 후에는 꼭 연락을 해 오고는 했다.
그 녀석을 보고 2년이 지났을 무렵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T. 이제부터는 가끔씩 오면 될 것 같아.
그치만 또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
정말로 끝난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S선생님은 그 말을 하고 3개월 후에 타계하셨다.
더 많은 일을 가르쳐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만 지금은 끝났다고 믿고 싶다.
S선생님의 장례식으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도 옅어져 나는 일상에 돌아와 있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에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다.
일상과 너무도 달라서
그 일이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그저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외할머니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 들었다.
봉투를 열자 외할머니의 편지와 또 한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S선생님에게 건네 받은 편지란다.
49일도 지났으니 약속대로 이 편지를 주마."
T에게.
오랜만이구나. S 선생님이란다.
시간이 꽤 흘렀구나.
이젠 괜찮니? 더 이상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는데.
나이를 먹으면 쓸데없는 말이 많아져서 큰일이구나.
사실은 T에게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 편지를 썼단다.
그렇지만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란다.
그 때는 어쩔 수가 없었단다.
그래도... 미안하구나.
그 날 T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사실 선생님도 몹시 무서웠단다.
T가 데리고 온 건 선생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치만 T가 겁에 질려 있어서
선생님마저 겁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 때는 운이 좋았어.
본산에서의 생활은 어땠니?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졌었니?
T와 만날 때마다 선생님이 아직 안 된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니?
그대로 돌려보내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T처럼 젊은 사람에게는 따분했겠지만 돌려보내지 않았던 거였어.
선생님이 매일 기도를 했지만
좀처럼 떠나 주지를 않았단다.
그래도 이제는 괜찮을 거야.
가까이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T.
혹시... 혹시라도 다시 괴로운 일이 생기면 본산으로 가렴.
그 곳이라면 아마 T가 강해질 테니까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못 할 거야.
마지막으로 T에게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지면 부처님께 몸을 맡기렴.
절대로 T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란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거라면
T에게는 괴로운 시간들이 끝없이 찾아올 거야.
T도 본산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
정말로 나쁜 것들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괴롭힌단다.
결코 끝내지 않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비웃고 조롱하고 싶은 거야.
분하지만 선생님의 힘이 미치지 못해서
눈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어도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할 때가 있어.
그 사람들도 도와 주고 싶지만...
아무 일도 해 주지 못할 때가 많단다.
선생님도 어떻게든 T를 도와 주고 싶어서 손을 써 봤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단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이젠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안심해선 안 돼.
안심하고 마음을 푸는 걸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알겠니?
절대로 완전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늘 조심하고 위험한 곳에는 가까이 가지 말고
쓸데없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해.
선생님을 믿으렴. 알겠지?
거짓말만 해서 미안하구나.
믿어 달라고 하는 게 더 뻔뻔하다는 건 알지만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부처님께 기도드리고 있었다는 건 믿어 주렴.
T가 매일 매일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있단다.
S
편지를 읽으며 내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식은 땀도 흐르고 심장 박동도 빨라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아직...... 끝난 게 아닌 건가?
갑자기 그 녀석이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젠 도망칠 수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녀석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뿐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내 눈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S선생님은 어쩌면 그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편지를 남겨 준 게 아닐까?
결국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그 녀석이 하야시에게도 들러붙은 게 아닐까?
대체 그 녀석은 하야시에게 무엇을 속삭인 걸까.
나와는 다른 좀 더 직접적인 말을 들어서 하야시가 이상해 진 건 아닐까?
S선생님은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해 주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일이었단 말인가...
결국 S선생님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걱정해 주셨던 게 아닐까?
의심하면 의심할 수록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좋을 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일은 여기까지이다.
2년 반에 걸쳐 일어났고 완전히 끝났는 지는 지금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전부이다.
결국 이유도 확실히 알 수 없고
후련하게 해결되거나 조력자가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어디에서 얻었는지 분명치 않은 지식이 불러온 일인지
아니면 그게 어떤 인과 관계에 있었던 건지
나는 전혀 모르겠고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연치고는 너무도 가혹하다.
과연 나는 이렇게 괴로워해야 할 만한 짓을 저지른 걸까?
난 그런 짓을 저지른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인 거지?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다.
"우선 무언가가 씌이거나 들러붙게 되면,
정말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마지막까지 누군가가 끝났다고 말해준다고 해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으로 미안하지만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작은 거짓말이 몇 군데 있다.
그건 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나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과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훨씬 더
이 이야기의 성립에 관한 근본적인 부분에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고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다.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모순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누군가가 알아 주기를 바랬다.
나는 OO다.
이제 와 후회해도 되돌릴 수가 없다..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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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2 (Sun)
우선 무언가가 씌이거나 들러붙게 되면, 정말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우선 무언가가 씌이거나 들러붙게 되면, 정말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내 경험으로 보면, 한 두 번 퇴마를 해서 무사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랜 기간동안 천천히 갉아먹히니까.
퇴마가 아예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긴 했다.
대략 2년 반 쯤 전.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지금 사지도 멀쩡하고 남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단, 그 일이 완전히 끝났는 지는 분명치 않다.
그 때 나는 스물 셋이었다.
취직 한 지도 일 년밖에 안 되었을 때라 살아가는 것만으로 벅찼다.
회사 규모가 작아서 입사 동기도 적었고 동기들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 동기 중에 토호쿠 지방 출신인 OO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이 녀석은 아는 것도 많았고 인맥도 넓었다.
그런데 흔히 하는 이야기들 중에
~~을 하면 XX해 진다던가, △△가 온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중에 몇 개는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 녀석이 말하기로는 우연히 몇 개의 조건이 갖춰지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장난 때문이었다.
당시엔 차를 뽑은 지도 얼마 안 되었고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르바이트하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입 덕분에 주말에는 줄곧 놀러 나가곤 했다.
8월 초에 헌팅으로 친해진 여자애들과 OO,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소위 말하는 심령 스팟에 담력 테스트를 하러 갔다.
그 곳은 정말 무서웠고 한기도 들었고
뭔가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딱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적당히 스릴을 만끽하다 돌아왔다.
그리고 사흘 후였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신입은 퇴근할 수 없다는
암묵적 룰이 있어서 매일 퇴근이 늦어지곤 했다.
피곤에 찌들어 집으로 돌아와서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는 방 입구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해 버렸다.
한 번 시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문득 충동이 일었던 것 뿐이었던 것 같다.
디테일한 설명을 하자면
당시 내 방은 역에서 걸어서 15분, 4평 정도의 원룸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좁은 복도가 있고 그 끝에는 방이 있었다.
전신 거울은 방의 입구, 즉 복도와 방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내가 OO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거울 앞에서 △을 한 채로 오른쪽을 보면 ◆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진짜로 나올 리가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른쪽을 쳐다 보았을 때였다.
방 한 가운데에 무언가가 있었다.
확실히 이상한 모습이었다.
키는 160cm정도였던 것 같다.
퍼석퍼석한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왔고
머리카락은 얼굴에 걸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실은 머리카락때문이라기보다는
얼굴에 부적 같은 것이 몇 장씩이나 붙어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걸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흰 옷을 입었고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머릿 속으로는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해 보려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상상해 봤으면 좋겠다.
좁은 원룸 고요한 방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있는 상황을.
원인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도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이 소용돌이쳤다.
어쨌든 불을 켜 보았는데 오히려 더 무서웠다.
갑자기 나온 그 녀석이 눈에 보여서.
그 녀석의 주변만 푸르스름해 보였다.
시간이 멈췄다고 착각할 정도로 조용했다.
우선 내가 내린 결론은 '방에서 나가자'는 것이었다.
발치에 떨어뜨린 가방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그 녀석에게서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시선을 돌리면 위험해 질 것 같았다.
뒷걸음질 치며 복도를 반쯤 지나왔을 무렵
그 녀석이 몸을 좌우로 흔드는 움직임이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신음 소리같은 것을 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일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옆 앞 편의점이었다.
어찌되었든 사람이 있는 편의점에 도착해서 안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는 '저게 대체 뭐야'하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과
'문 잠그는 거 깜빡했다'하는 이상하게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날은 방에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했을 무렵
쭈뼛쭈뼛 문을 방 문을 열었다.
다행이다.
보이지 않았다.
방에 들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밖에 나가 캔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웠다.
원래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게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까보다는 좀 더 대담하게 방에 들어갔다.
'그래. 없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두운 방에 전등을 켰다.
지난 밤에 일어난 일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그 녀석이 있던 곳의 바닥에 엄청난 냄새를 풍기는 진흙이 질척이고 있었다.
문득 알아차렸다.
방을 나설 때 불을 끄지 않았다.
전등 스위치를 누른 왼손을 보니 그 곳에도 진흙이 묻어 있었다.
잠시 암울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이미 나와 버린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지만 나는 진흙을 청소하고 샤워를 하고 출근했다.
이것도 큰 문제였지만 회사를 쉴 수도 없었으니까.
회사에 도착하자 평소와 변함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OO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만들었다.
일의 발단과 관계가 있는 OO에게서 어떤 정보라도 알아내 보려 했다.
점심 시간이 되어 겨우 OO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나: "전에 말이야. △하면 ◆가 나온다는 얘기 했었잖아.
어제 그걸 했더니 진짜로 나왔어."
OO: "뭐? 무슨 말 하는 거야?"
나: "그러니까, 그게 진짜로 나왔다고!"
OO: "아아~ 알았어 알았어."
나: "장난하는 거 아니야. 정말로 위험한 게 나왔단 말이야."
OO: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나도 몰라!"
안 되겠다. 해결이 안 되겠어.
OO가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결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담담히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허풍이라고 생각하던 OO도 점점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내 방에 함께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밤 10시. 운 좋게도 일찌감치 퇴근을 할 수 있었던 OO와 나는 방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아침에 맡았던 악취가 코를 찔렀다.
문을 닫은 방에서는 열기와 함께 악취가 풍겼다.
퇴근 길에 지겹도록 내 설명을 들은 OO는 "...진짜야?" 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믿어 준 모양이다.
문제는 OO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만
썩 의지가 되지는 않았다.
우선 퇴마하러 가는 게 좋겠다는 말과
아는 사람에게 물어 보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그 녀석은 도망치듯 돌아갔다.
예상은 했지만 녀석의 인맥에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밤은 캡슐 호텔에 묵었다.
오늘 밤에도 다시 나오면 정말 끝장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자 우선 근처 절에 갔다.
회사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스님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 쪽 전문이 아니라 잘 모르겠군요.
마음을 차분히 가져 보시는 게 어떨까요. 분명 기분 탓일 겁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져 보시는 게 어떨까요. 분명 기분 탓일 겁니다."
이런 팔자좋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 날은 근처 유명한 절과 신사를 몇 군데나 돌았지만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쳐버린 나는 사이타마에 있는 부모님 댁을 의지해 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할머니가 종종 신세를 지고 있는 S선생님이라는 비구니에게 상담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그 사람 말고는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S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하겠다.
어머니는 나가사키 출신이고 외할머니도 나가사키에 계신다.
외할머니는 열렬한 불교도다.
S선생님은 외할머니가 매주 다니는 절 겸 자택의 주지 스님이다.
나도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다.
자세한 건 잘 모르지만, 종파명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니까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불교에 귀의한 분이다.
인품은 온후하고 말투도 차분하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무렵 아버지가 땅을 사서 집을 짓기로 했다.
고사를 지낸다고 하던가? 어쨌든 그 땅을 제령했다.
그리고 1주일 후에 나가사키의 외할머니에게서
"땅이 좋지 않으니 S선생님이 제령을 하러 가신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당연히 어머니도 이미 다 했는데 왜 그러시냐는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외할머니는 "그래도 S선생님이 아직 남아있다고 하신다" 라고 하셨다.
다시 말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의지할 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S선생님이었다.
날도 저물고, 사이타마의 부모님 댁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 쯤이었다.
도시와는 달리 공장뿐인 마을이라 9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이 뜸했다.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약 20분 동안 빠르게 걸었다.
인적없는 어두운 길에 가로등만이 늘어서 있었다.
내심 그저께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겁이 났지만
다행히도 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밤이 되고 서늘해져서인지 나는 내 몸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목이 뜨거웠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자면 목에 끈을 감아 불을 피우는 것처럼 좌우로 번갈아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목에 손을 대어 보았지만 한기가 들었다.
뜨겁다. 목만 뜨거웠다.
그리고 아릿해지기 시작했다.
발진같은 게 생긴 모양이었다.
느긋하게 걸어갈 수가 없어서 집까지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숨을 헐떡이며 집 현관 문을 열자 어머니가 마침 전화를 끊고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어머. 방금 나가사키에 계신 외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는데 걱정을 하시더구나.
S선생님이 네게 안 좋은 일이 생겼으니 와 보라고 하셨대.
너 괜찮은 거니? 어머나. 너 목이 왜 그러니?"
대답하기 전에 현관 문의 거울을 보았다.
목 주변이 끈에 휘감긴 것처럼 붉은 줄이 생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가느다란 발진이 부어 올라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
어머니 방에 있는 자그마한 불상 앞에서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었다.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다.
걱정한 아버지가 "왜 그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 왔다.
어머니는 이상을 감지하고는 외할머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울먹이는 목소리다.
비로소 이때서야 나는 도망칠 곳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사흘이 지났다.
정신적으로 황폐해져서인지, 그 녀석이 친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틀간 고열에 시달렸다.
목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땀을 흘렸고 이틀 째 낮에는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사흘 째 아침에는 목에서 나오던 피는 멈추었다.
열도 미열 정도로 내려서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다만 목 주변이 이상하게 가려웠다.
쿡쿡 찌르듯이 아프고 가렵다.
베개와 이불, 수건에 닿으면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다.
피가 났으니까 딱지가 생겨서 가려운 거려나 하고 일부러 만지지 않도록 신경썼다.
이불에 파묻혀 저녁까지 신경쓰지 않으려 했는데
화장실에 갔을 때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거울을 봤다.
거울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았는데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거울에는 본 적도 없는 몰골이 비춰져 있었다.
불그스름한 자국은 가라 앉았다.
대신 발진이 더 커져 있었다.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닭살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진다.
원래 목에 나 있던 붉은 줄은 두께가 1cm정도였다.
내 살이 좀 흰 편이어서 목에 붉은 끈을 감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사흘 전에 있었던 일.
눈 앞의 거울에 비친 목의 붉은 줄에는 농이 들어차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커다란 여드름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 같았다.
너무도 역겨워서 그 자리에서 토하고 말았다.
물로 목을 씻고 연고를 바르고 나서 울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왜 나인 거지'하는 분노뿐이었다.
울기도 지쳤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OO이었다.
이렇게 기쁜 전화는 없었다.
나: "여보세요"
OO: "오오~ 괜찮아?"
나: "아니.. 괜찮을 리가 있겠냐."
OO: "아.. 진짜 위험한 거야?"
나: "위험하고 말고 한 정도가 아니야.
하아... 것보다 뭐 좋은 소식 없어?"
OO: "음.. 고향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알 만한 녀석이 없어서... 미안하다."
나: "어.. 그래서?"
물론 OO도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 신경을 써 주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상대를 배려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OO: "그 대신에 친구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쪽에 강한 사람이 있대.
그런데 돈이 좀 든다는데..."
나: "뭐? 돈을 받는다고?"
OO: "응. 그런 것 같아... 어떻게 할래?"
나: "얼마나?"
OO: "친구 말로는 대충 50만엔 정도..."
나: "50만 엔?!!"
취직을 한 상태였긴 했지만 50만엔을 지불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돈이 아깝긴 했지만 공포와 고통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 "알겠어. 언제 소개해 줄 건데?"
OO: "그 사람 지금 군마에 있대. 친구한테 물어볼 테니까 조금 더 기다려 줘."
한편 내가 불상 앞에서 나무아미타불만을 되뇌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외할머니는 바로 S선생님께 상담을 하고
결론적으로 S선생님이 와 주시기로 했다.
그런데 S선생님도 여러가지로 바쁘시고 무엇보다 연세가 있으셨다.
이 쪽으로 와 주시는 건 3주 뒤로 정해졌다.
다시 말해 3주 동안은 불안과 공포,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두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OO가 다시 전화를 걸어 온 건 밤 11시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OO: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내일 갈 수 있대."
나: "내일?"
OO: "그래. 내일 일요일이잖아?"
그런가. 어느 샌가 그 녀석을 처음 보고 나서 5일이 지났다.
신기하게도 회사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나: "알겠어. 고맙다. 우리 집까지 와 주는 거야?"
OO: "집까지 간대. 차로 갈 테니까 주소 좀 보내 줘."
나: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와 줬으면 좋겠는데."
OO: "갈게."
나: "돈은 나중에 줘도 괜찮을까?"
OO: "아마 괜찮지 않을까?"
나: "알겠어. 근처에 오면 전화해."
그 날 밤. 꿈을 꾸었다.
자고 있는 내 옆에 하얀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자
손을 땅에 짚고 허리를 숙여 담담히 인사를 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방에서 나가기 직전에 다시 한 번 담담히 목례를 했다.
이 꿈이 그 녀석과 상관이 있는 지는 그 땐 몰랐다.
이튿 날. 오후에 OO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로 길을 알려주고 맞이하러 나갔다.
OO와 OO의 친구, 그리고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왔다.
보통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약간 건달같은 느낌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부모님께는 미리 설명을 드리지 않아서 처음엔 수상해 하셨다.
그 남자는 아마도 가명일 테지만 자신의 이름을 '하야시'라고 했다.
하야시: "T군(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번거로운 일에 휘말린 것 같군요."
아버지: "그런데 하야시 씨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하야시: "그게 말이죠. 이런 일은 초짜가 함부로 건드리면 해결이 안 나거든요.
아버님. 아시겠습니까? 믿지 못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T군은 위험할 겁니다."
아버지: "T가 정말 위험한 겁니까?"
하야시: "저도 이 쪽 방면 일은 꽤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군요.
이 방 가득 나쁜 기운이 가득차 있습니다."
아버지: "......실례지만 하야시 씨의 직업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야시: "아.. 신경쓰이십니까? 그야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상하시겠죠.
그렇지만 제대로 제령을 하고 정화하지 않으면 T군은 정말로 끌려 가 버릴 겁니다."
어머니: "저기... 하야시 씨에게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하야시: "그야 맡겨 주시기만 한다면야. 이런 일은 저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되거든요.
다만 이 쪽도 위험을 떠안게 되니 조금은 성의를 보여 주셔야....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아버지: "얼마 쯤이면 되겠습니까?"
하야시: "뭐.. 200 정도는 주셔야..."
아버지: "그렇게 비싸다니!"
하야시: "그래도 친구를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길래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싫으시다면 저야 아무 상관도 없긴 합니다만.
그치만 단 200만 엔에 아드님을 구할 수 있다면 저렴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T군 절에 갔을 때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았죠?
이런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다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전문가를 찾아 볼 생각이십니까? "
나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200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엔 OO쪽을 보았지만 OO도 찜찜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 쪽 방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결국 그대로 하야시에게 맡기기로 했다.
하야시는 바로 밤에 제령을 하겠다고 했다.
준비를 하겠다며 자금을 받아 밖으로 나갔다.
하야시는 저녁이 되어 돌아왔고 양초를 세우고 부적같은 종이를 온 방 안에 붙이고
수정 구슬을 두고 염주를 쥐고 잔에 일본주를 따랐다.
대충 그럴 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T군. 이제부터 제령을 할 거야. 이젠 괜찮을 테니 걱정 마.
아버님 어머님. 죄송하지만 집에서 나가 주시겠습니까?
어쩌면 영이 다른 사람에게 들러 붙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찝찝하지만 바깥에 있는 차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날도 저물고 주변이 어둑해졌을 무렵에 제령이 시작되었다.
하야시는 불경같은 것을 외우며 일정한 타이밍으로 잔에 손가락을 적시고
그 물방울이 나에게 튀도록 했다.
나는 반신반의한 채로 이불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하야시가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제령이 시작되고 시간이 꽤 흘렀다.
경을 외던 목소리가 중간 중간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당시엔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목이 몹시 아팠다.
가려움을 뛰어 넘어 명백한 아픔이 느껴졌다.
눈을 뜨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가려움을 견디고 있으려니 경을 외던 목소리가 뚝 멈추었다.
그런데 이상햇다.
경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독경이 끝났는데도 하야시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목의 아픔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한기마저 들고 무언가가 이불 위에 올라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면 안 된다.
절대로 눈을 떠서는 안 된다.
알고는 있었지만... 눈을 뜨고 말았다.
눈을 뜨자 무서운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하야시는 이불에 누워 있던 내 오른 편에 앉아 제령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나와 하야시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야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가지런히 손을 두고 상반신만 숙여 하야시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다.
하야시와 그 녀석의 얼굴 사이에는 주먹 하나 정도가 들어갈 만한 틈밖에 없었다.
녀석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마치 올빼미처럼 머리를 움직이면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어떤 말을 중얼거리며 하야시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야시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던 건 지도 모른다.
하야시는 약간 고개를 떨구듯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로 미동도 않고
맥없이 입을 벌린 채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약간 미소를 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때때로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계속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녀석의 고개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고개는 나를 향했다.
나는 서둘러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었다.
내 얼굴 바로 앞에서 그 녀석이 올빼미처럼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광경이 눈 앞에 선했다.
너무 무서웠다.
쿠당탕탕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야시가 도망친 것 같았다.
나는 너무도 두려워서 계속 이불 속에 파묻혀 숨어 있었다.
부모님이 와서 전등을 켜고 이불을 벗겨냈을 때
나는 몸을 둥글게 만 채로 굳어 있었다고 한다.
하야시는 부모님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대로 차에 올라타서
기다리고 있던 OO,OO의 친구와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중에 OO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출발시켜."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결은 커녕 더욱더 나쁜 상황에 빠진 나에게
3주 동안 S선생님을 기다릴 여유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역시 길이가 길면 의욕이 뚝뚝 떨어져...
하지만 아직 하편 번역이 남았다!!!!!
하지만 아직 하편 번역이 남았다!!!!!
2011/06/02 (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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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라는 어느 중년 남성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A씨는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가서 점심으로 그 지방 향토 요리를 먹었는데
그게 몸에 맞지 않았는지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시골이라 공중 화장실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풀숲에서 일을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처럼 여행을 왔는데 그런 민망한 추억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참자...
그렇게 견디며 계속 화장실을 찾아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마을 회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마을 회관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는데
마침 현관에서 나오던 어떤 아줌마와 부딪칠 뻔 했다.
서둘러 화장실 좀 쓰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미 폐관 시간이 되어서 자신도 문을 잠그고 돌아가는 길이니
다른 곳에 가 보라는 쌀쌀맞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참을 만큼 참은 A씨는 그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아줌마는 노골적으로 싫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A씨는 신경쓰지 않고 화장실의 위치를 묻고는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낡은 목조 건물이라 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는데
아까의 아줌마를 향한 짜증과 더해져 그 마을 회관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뛰쳐 들어간 화장실에는 3개의 칸이 있었다.
A씨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돌아간 뒤에
저 짜증나는 아줌마가 창문 단속을 하러 왔을 때 냄새가 남아있게 하고 싶지 않아
환풍기가 달려 있는 가장 안 쪽 칸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일을 본 사람이 방대한 양의 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잘못 물을 내렸다가는 변기가 막혀 물이 넘칠 지도 몰라서 A씨는 옆 칸으로 들어갔다.
겨우 해방된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뚜벅뚜벅 다가와서 화장실 문 앞 복도에서 멈추었다.
아무래도 아줌마가 채근하러 온 모양이었다.
아줌마의 인정머리없는 태도에 기분이 상한 A씨는
딱히 서둘러 나가 주어야 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남자 화장실 안까지 들어오기라도 할 건가?'
콧방귀를 뀌며 계속 느긋하게 일을 보았다.
5분 정도가 지나 A씨는 후련하게 일을 마치고 칸을 나왔다.
화장실 문 앞에서 멀어지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아줌마가 아직 문 앞에 있는 모양이었다.
'거 참 심보 고약한 아줌마로구만.'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씻고 있는데
가장 안쪽 칸을 이대로 두고 나가면
아줌마는 자신이 그랬다고 오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는 자신이 그랬다고 오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지...
가장 안쪽 칸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문고리에 빨간 사용중 표시가 보였다..
안쪽에서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았지만 틀림없이 잠겨 있었다.
바로 옆 칸에 있었으면서도 문을 여닫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게 이상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굉음을 내며 일을 보지는 않았을 텐데.
화장실 밖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옆 칸에 사람이 들어왔다면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것도 그렇지만, 옆 칸은 물을 내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대 참사가 일어나 있었다.
그런데 물을 내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이 들어있으면 내가 물을 안 내려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갑자기 가장 안쪽 칸에서 휴지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사람이 들어 있었군.
안도감을 느끼며 복도를 향해 발을 내딛으려던 순간
A씨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들어있던 칸의 문도 잠겨 있었다.
화장실에는 아까부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A씨의 눈에 뜨이지 않고 A씨의 눈 앞에 있는 칸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기묘한 느낌 때문에
A씨는 자신이 들어갔던 칸의 문고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멈춰서 있는 동안에
가장 안쪽에서 들리던, 휴지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이상하게 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휴지를 전부 다 잡아 당겨내 버리려는 것처럼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생활 속에서 늘 듣던 친숙한 소리였지만
일단 위화감을 느끼게 되자 그보다 더 소름끼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A씨의 귀에 이번에는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지만 잠겨 있는 가운데 칸에서
옆 칸에서 났던 것처럼 휴지를 잡아 당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른 때도 아닌 바로 그 순간에
다른 곳도 아닌 그 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있다는 것이 절망적으로 두려웠다.
화장실 칸 안에 있는 '무언가'에게 들키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신경을 집중하며 복도로 나가는 화장실 문 앞에 다다랐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체중을 싣고 몸을 지탱하고 있던 A씨의 귀에
이번에는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문 바깥에서 누군가가 뛰고 있는 소리였다.
뛰어 올랐다가 착지하기까지의 텀이 이상하게 길었다.
A씨가 느끼기에는 장대 높이뛰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직감적으로 '지금 밖에 나가면 여기 있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겠고 화장실 안에 머무르는 것도 싫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주저하고 있는 A씨의 마음 속에서
갑자기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복도에서 날뛰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살의를 느꼈다.
어째서인지 A씨는 이 상황이 바깥에 있는 '무언가'의 탓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밖에 있는 '무언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이다.
밖에 있는 '무언가'를 죽이면 나는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를 죽이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
문을 걷어차듯 열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씩씩대며 복도에 서서 목이 부러질 듯이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 보았지만
죽일 수 있을 만한 생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에 바짝 엎드려 조그만 '무언가'를 찾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바로 벌떡 일어서서 창문 밖을 보았지만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때 A씨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밖에 있는 '무언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왜 아무 것도 없는 걸까.
뭐라도 상관없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무슨 생물이라도 상관없다.
왜 나에게 죽어주려 하지 않는 것인가.
이대로 가다가 내가 '무언가'에게 살해당하게 되면 어쩌지...
눈물을 닦으며 냉정해지자고 스스로를 다스리던 A씨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그 아줌마를 죽이면 되겠다.
그 아줌마는 성격도 못돼 보였고 약해 보였으니까
아마 간단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한 순간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끓어 올랐다.
큰 소리로 으하하하하하 목이 터져라 웃었다.
이제서야 '무언가'를 죽일 수 있게 되어서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현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A씨는 그대로 바깥으로 뛰쳐 나갔다.
그리고 1톤 트럭 조수석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바닥을 더듬고 있는 아줌마를 발견했다.
괴성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달려갔지만
A씨의 존재를 알아챈 아줌마는 공포에 질려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간발의 차이로 아줌마를 놓친 A씨는 운전석 쪽으로 돌아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서둘러 아줌마가 운전석 차 문을 잠궈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A씨는 트럭의 짐칸에 뛰어 올랐다.
아줌마는 트럭의 시동을 걸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지르며 급히 차를 출발시켰다.
A씨는 균형을 잃고 짐칸에서 떨어져 머리를 땅에 세게 부딪쳤다.
A씨는 그 때 뇌진탕에 걸렸다고 한다.
무언가 살아있는 것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자신이 너무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며
땅에 大자로 뻗어 저녁 노을을 노려보면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줌마에게서 연락을 받고 온 것 같은 남자들이 A씨를 에워쌌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죽일 수 있는 생물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A씨는 또 다시 극도의 흥분 상태에 빠졌다.
가장 죽이기 쉬울 것 같은 노인이 A씨를 향해
이상한 말들을 외치며 이상한 냄새가 나는 물을 뿌렸다.
그 순간, A씨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바로 잠에 빠졌다.
자그마한 진료소 침대 위에서 눈을 뜬 A씨는 안정을 되찾았다.
경찰관과 아까 그 노인이 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경찰관이 물어 보는 대로 A씨는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었는지 모르겠다는 것도 말했다.
나 자신도 자신이 느낀 것과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는데
경철이 믿어 줄 리가 없다.
체포되겠구나 하고 반쯤 체념하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훈방에 그쳤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A씨는 몇 번이고 사죄했다.
다른 방에 있던 아줌마에게도 사죄하려 했는데
아줌마는 "마지막까지는 가지는 않았다"는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노인은 A씨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노인과 아줌마가 설명해 준 것에 따르면
A씨는 '무샤쿠루(ムシャクル様)'의 저주에 걸렸다고 한다.
'무샤쿠루'란 그 지방의 민간 신앙으로 소위 재앙신(タタリ神)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무샤쿠루'라는 이름은 '무사가 오다(武者来る)' 또는 '무사가 미치다(武者狂う)'로부터 유래했고
'무샤쿠루'의 저주를 받은 자는 '살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실제로 살생을 행하게 되기도 한다.
그 지역에서는 몇 년에 한 번 '무샤쿠루'의 저주에 걸린 사람이 생긴다.
저주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은 없다.
A씨에게 뿌린 '냄새나는 물'은 '무샤쿠루'를 모시는 사당 서쪽에 있는 연못의 물이었는데
'무샤쿠루'의 저주를 받았을 때 그 물을 뿌리면 저주를 벗어날 수 있다고 전해진다.
'무샤쿠루'의 저주를 받은 사람에게 동물을 던져 주고
그 동물을 죽이고 있는 동안에 물을 길어 올 수밖에 없다.
(이 때 시간을 더 벌 수 있도록 이 지역에서는 큰 동물을 기르는 집이 많다.)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물을 뿌린 뒤에 의식을 잃게 만들고 며칠 후에 꺠어나게 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 이외의 방법으로 제압했을 때에는
자신의 손목을 물어 뜯거나
손톱으로 허벅지 안쪽 동맥을 끊어서
'도구를 쓰지 않고'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네는 운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면 이번엔 운이 좋았던 거야."
노인은 몇 번이고 그렇게 되뇌었다.
그 후 A씨는 뇌진탕 이외의 이상은 없어서 퇴원을 하고
삿포로로 돌아 왔다.
그러나 A씨는 그 이후로 '소리'가 너무도 무서워졌다고 한다.
발소리나 누군가가 뛰어 다니는 소리, 초인종 소리, 물방울 소리 등이 들리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자신이 언제 또 그렇게 될 지
자신의 주위 사람이 언제 그렇게 될 지 생각하면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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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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