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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의 모든 이야기는 양심없는 무단 수집을 거부합니다. ⓒMur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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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4 (Wed)
쓸데없이 아침 일찍 일어난 김에 내 중딩 시절의 공포 체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여름 날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에다가 클럽 활동도 없는 날이었고
 
가족들은 모두 볼 일을 보러 외출했었다.
 
나는 2층에 있는 내 방에 있었는데
 
어느 샌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무더위 때문에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으려니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집에는 아무도 없을 텐데 말이다.
 
기분 탓이겠지 하며 다시 잠에 빠지려 하는데
 
이번에는 1층에서부터 또렷한 기척이 들렸다.
 
가족들이 돌아왔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잠이 싹 달아난 상태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발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형과 나 뿐인데
 
그건 가족의 발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가벼운 발소리였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발소리에 갑자기 공포를 느꼈다.
 
나는 재빨리 벽장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벽장 문 틈새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12~13살 가량의 기모노를 입은 여자 아이가
 
내 방안으로 들어 오는 게 보였다.
 
오싹했다.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소녀는 초조한 기색으로 방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분명 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어 겁이 났다.
 
숨을 죽이고 계속 상태를 주시하고 있으려니
 
소녀는 갑자기 주저앉아 책장 밑의 10cm 정도 되는 틈을 들여다보았다.
 
소녀는 얼마간 그 곳을 빤히 쳐다보더니
 
급기야는 직접 그 틈 안으로 손을 뻗어
 
뒤적뒤적 틈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소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치 빨려들듯 소녀를 바라보았다.





 
문득 소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갑자기 소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천천히 방을 나서고는
 
 이내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나는 소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들킬 것만 같았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잠시 기다린 후에
 
조심스럽게 벽장을 나와서
 
나는 문제의 그 틈새를 멈칫멈칫 들여다보았다.
 
 
 
 
 
 
 
 
 
역시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쥐어 짜내 그 틈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스락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다.
 
손에 닿은 순간 이성을 잃을 뻔 했지만
 
무서움을 억누르며 천천히 그것을 집어 꺼내 보았다.
 
 
 
 
 
 
 
나온 것은 악취를 풍기는 누리끼리한 뭉치였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헉 하고 놀랐다.
 
익숙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나의 XXX티슈였던 것이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부터 성욕이 들끓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님께 들키는 건 무서웠기 때문에
 
나는 사용한 티슈는 변기에 버렸다.
 
그런데 소녀가 나타난 그 여름 날.
 
나는 쏟아지는 잠 때문에 1층에 있는 화장실까지 내려가는 게 귀찮았다.
 
그렇다고 해서 방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온 방 안에 냄새가 밸 것이다.
 
어쩌지... 고민하고 있는데 바로 그 ''이 눈에 들어왔다.
 
이 틈새에 넣어 두면 냄새가 퍼지지도 않을 거고
 
나중에 따로 버리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티슈를 틈 안으로 쑤셔 넣고는
 
안심하고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 떠올리고는 한 순간에 공포가 사라졌다.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귀신을 물리쳐 주었다.
 
왠지모를 성취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지옥은 이제부터였다.
 
티슈를 처리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자
 
그 곳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두운 얼굴을 한
 
엄마가 서 있었다.
 
대체 언제 돌아오신 거지?
 
그 귀신은 못 보셨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실로 괴롭고 슬픈 현실이었다.
 
 
 




 
 
 
 
 
 
엄마는 오늘 숙모 댁에 놀러 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만난 적 없던 사촌 여동생이
 
나와 함께 여름 축제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사촌 여동생은 여름 축제에 가려고 유카타로 갈아 입고
 
우리 집에 왔었다.
 
사촌 동생은 내가 방에 숨겨 놓은 야한 잡지나 찾아 볼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험한 꼴을 보게 되었다.
 
사촌 동생은 내 티슈를 본 데다가 만지기까지 한 충격으로
 
계속 울어 댔고 숙모는 사촌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내 몸에서 피가 몽땅 빠져 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이셨다.
 
왜 이렇게 돼 버린 것일까...
 
폭풍같은 허무함과 상실감에 휩싸인 나는
 
그 날 이후로 '틈새'라는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버렸다.


















    

당신의 '비둘기' 폴더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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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9 (Mon)
벌써 몇십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던 어느 여름 날.
 
할아버지 댁은 킨키 지방의 어느 시골이었는데
 
매년 여름이 되면 온 가족이 할아버지 댁에 가곤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몹시 귀여워해 주셨고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에 설탕을 뿌린 간식을 주셨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는 이웃의 동갑내기 친구 H와 H의 남동생과 함께 놀았다.
 
들판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숲에서 도토리를 줍고
 
공원에서 매실을 따며 놀곤 했는데
 
단 한 곳. 들어가서는 안되는 장소가 있었다.
 
그 곳은 숲을 조금 빠져 나간 곳에 있는
 
높고 단단한 담장에 둘러싸인 부지였다.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라고는 해도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으니 들어갈 수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거기에는 가까이 가면 안 된다. 
 
그 안에는 도깨비가 있는데
 
들어가면 천벌을 받는단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신신당부를 하셔서
 
무의식적으로 겁이 나서 나는 가까이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셋은 그 부지를 피해서 놀았는데
 
그 날은 조금 달랐다.
 
 
 
"있지, 저 안에 들어가 보지 않을래?"
 
H가 손가락으로 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어? 저기에 가면 안 된다는 거 너도 알잖아?"
 
나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지만 H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괜찮다니까. 이 근처에서는 질릴 정도로 많이 놀아봤는데
 
아직 저기만 못 들어가 봤잖아."
 
중학생이 되어서 조금 머리가 굵어져서 그런지
 
이제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건 다 미신이야 미신. 
 
우리를 저기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을만큼
 
엄청난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 거 아냐?"
 
H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가지 말자. 자물쇠까지 잠겨 있고 말이야."
 
내가 주저했더니 H는 마치 기다렸다는듯 대답했다.
 
"그런 건 다 녹슬어서 금방 부서져. 
 
너... 겁나냐?"
 
나도 여기서 빼고 싶지는 않아서 큰소리를 쳤다.
 
"......알겠어.
 
대신 난 문 앞까지만 같이 가 줄 테니까
 
안에는 너 혼자 갔다 와. 알겠지?"
 
그 때 다섯 살이었던 H의 동생은 검지손가락을 열심히 빨아대고 있었다.
 
 
 
 
H는 바로 근처에 있던 돌을 주워 자물쇠를 부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오래된 철제 자물쇠였는데
 
녹이 슬어 이미 퍼석퍼석해진 상태였다.
 
나도 내심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문.
 
대체 그 안에는 뭐가 있는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었다.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으로
 
H가 자물쇠를 부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H가 두 손으로 온 몸의 힘을 실어 
 
돌로 자물쇠를 다섯 번 정도 내리치자
 
금이 가더니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H는 돌을 내려두고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그럼 열어본다?"
 
천천히 두 손으로 문을 밀었다.
 
문 안의 풍경을 보고 H와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하얀 모래가 흩뿌려져 있고
 
한가운데에는 매우 낡은 신사가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몹시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야!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이제 가자!"
 
H에게 소리쳤다.
 
H의 동생은 울어대기 시작했다.
 
H가 떨면서도 하얀 모래 위에 발을 들인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분위기가 변했다기보다는 
 
내 몸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에 짓눌려 움직일 수 없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고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리고 이내
 
 
 
 
"후후훗...후훗.."
 
 
어린 아이인지 어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던 그 순간
 
내 몸이 먼저 위험을 감지한 건지
 
미칠 것만 같은 공포가 온 몸 구석구석에 퍼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빽빽 울어대는 H의 동생의 팔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 집으로 갔다.
 
그 때 마침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그런 때에 나는 울어대는 H의 동생의 팔을 붙들고 땀에 흠뻑 젖어 뛰어 들어온 것이다.
 
한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지만
 
하악하악 숨을 헐떡이는 나를 보고는
 
평소에는 인자하시던 할아버지가 
 
"너 이 녀석! 그 안에 들어간 거냐?!
이 멍청한 녀석같으니라고!!"
 
고함을 치시며 나를 때리려 하셨다.
 
그 때까지 할아버지는 나에게 화를 내신 적이 없었기에
 
나는 할아버지를 보고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나서 할아버지를 말렸고
 
조금 진정이 된 후에 자초지종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 뒤의 일이 기묘헀다.
 
 
마을 사람들과 지역 경찰 모두 무표정하게 슬픈 얼굴로
 
형식적으로 H의 수색 작업을 마치고는
 
곧장 나와 부모님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 H의 할머니가
 
"H가....우리 H가.. 손놀이공<참고 사진>이 되었구나..."
 
오열하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있다.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할아버지 댁에는 가지 않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날 이후로 변한 것이 있다.
 
아주 가끔. 몹시 꺼림칙한 꿈을 꾸게 되었다.
 
 



 
 
짙게 안개가 끼어 있는 그 부지 안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 온다.
 
무의식적으로 그 쪽을 쳐다보면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기모노를 입은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고
 
아이는 땅에 공을 통통 튀기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웃고 있는 건 그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튀기고 있는 사람의 머리라는 것을.












    




얼마만의 업뎃인지...
혹시나 기다리셨을 분, 죄송합니다
2011/07/27 (Wed)
 내 친구 중에 FN이라는 이니셜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
 
짐작했을 지 모르겠는데 녀석은 외국인이다.
 
하지만 FN은 일본에 살았다.
 
녀석과 나는 오타쿠 동지였다.
 
둘 다 로봇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게라지 키트와 프라모델에도 둘 다 관심이 많았다.
 
특히 더 좋아했던 건 Heavy Gear였다.
 
그건 작아도 꽤 마음대로 만지기가 괜찮았다.
 
몸뚱이같은 것을 바꿔 끼워서 자신만의 멋진 Gear를 만들 수 있다.
 
취향이 이렇다보니 물론 둘 다 AC 시리즈도 빠삭했다.
 
최고의 친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취향이 같았다.
 
오버드 부스트와 오비트가 AC에 들어왔을 때에는
 
둘 다 밤을 꼬박 새워 각자 좋아하는 기체를 조립해 서로 자랑을 했는데
 
데칼은 제외하고 컬러링, 파트 선택이 전부 똑같았다.
 
마치 쌍둥이처럼.
 
분명 생판 남인데도 우리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4년 전쯤이었다.
 
윈도우 95가 아니면 작동되지 않는 Heavy Gear의 컴퓨터 게임을 손에 넣었다.
 
둘이서 돈을 모아 어렵사리 윈도우 95가 탑재되어 있는 중고 컴퓨터를 샀다.
 
그 FN이 작년에 자살을 했다.
 
그 이유는 어쩌면 꽤나 복잡하고 기괴하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FN은 자신의 부모님이 단순한 회사원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일본에도 진출해 있는 해외 거물 골동품 브로킹 회사의 매입 담당이었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어 보면
 
골동품에 거는 보험에도 손을 뻗쳐 해외 보험 회사 그룹의 총수 집안이었다.
 
CEO는 표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겉으로 나서지 않는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다.
 
FN이 어렸을 때엔 괜히 사치스럽게 키워서 오만하게 자라지 않도록
 
엄하게 키웠다고 한다.
 
버릇없는 아이로 크면 나중에 본인이 곤란해 질 테니
 
성인이 되고 나서 알려 준다는 교육방침이었다고 한다.
 
 







 
 
 
자살하기 한 달 전 쯤에 전화가 왔었다.
 
한밤중이었다.
 
FN의 아버지는 영어 억양이 섞인 일본어로
 
"빨리 와라. 지금 차를 보냈다."고 하는 것이었다.
 
 가 보니 FN의 부모님이 "어서 와라. 노부. 어서 가 줘."
 
조급하게 나를 FN의 방으로 안내했다.
 
 
 
 
 
 
소중히 여기던 콜렉션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다이캐스트 제(製) 피규어는 무사했지만
 
프라모델은 꽤 많이 망가져 있었다.
 
둘이서 함께 만든 게라지 키트인 헤르마이네는 머리가 깨져 있었다.
 
대체 무엇이 이 오타쿠 친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것일까.
 
벽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함께 샀던 컴퓨터도 부서져 있었다.
 
FN은 한창 의자를 휘두르며 벽을 부수고 있었다.




 
 
"F! 그걸로 나를 Hit 해 봐!"
 
이렇게 말했더니 FN은 나를 돌아보았다.
 
핏발 선 눈으로 나를 30초 가량 응시한 후
 
FN은 겨우 진정이 된 듯 했다.
 
FN이 진정한 뒤에 이야기를 들었다.



 
 
 
 
 
 
"파더가 말이야.
 
60억 달러 정도 되는 자산이 있대.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나보고 집안을 이어받으래."
 
 
 
뭐? 처음엔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프라모델도 엄청 많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왜 화를 내는지조차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이해가 되었다.




 
 
 
 
"그런 유치한 장난감같은 것들은 버리고
 
더 큰 꿈을 가져라.
 
돈만 있으면 등신대도 만들 수 있어.
 
물론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걸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번 후라면 말이다.
 
광장에 등신대 로봇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
 
네가 좋아하는 견면(犬面) 로봇도
 
돈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FN에게는 분노의 도화선이 되었다.
 
솔직히 나도 화가 났다.
 
뭐?
 
그러면 우리가 좋아하는 이것들이 전부 쓰레기라는 건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산 소중한 전리품이다.
 
쓰레기가 아니다.
 
FN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감이 되었다. 분했다.
 
다른 사람이 남긴 돈으로 몇 만 개를 산다고 해도 
 
틀림없이 짐덩어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FN은 진정한 후에 부서진 콜렉션을 보고서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교우관계는 청산해라.
 
특히 노부에게는 돈을 두둑히 주고 설득할 테니 안심하거라.
 
앞으로는 돈이 되는 대인 관계에 대해 배워라.
 
어른들의 인간관계를 가르쳐 주마."
 
 
 
이것은 FN의 부모님에게 직접 들은
 
FN이 자살하기 직전에 그들이 FN에게 한 말의 내용이다.
 
두 사람은 내가 FN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말싸움을 한 끝에 FN이 방에 틀어박혔다.
 
저녁 식사를 하라고 부르러 갔더니 FN은 이미 죽어 있었다.
 
FN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노부. 가장 소중한 너에게.

두 번째 이하로 소중한 것들을 모두 너에게 남긴다."
 
 
 
 
 
 
 
 
 
 
처음에는 FN의 부모님이 나를 몹시 원망했다.
 
나같은 오타쿠 친구가 FN과 가까이했다는 게 원인이라면서.
 
그렇지만 몇 년 동안 꾸준히 FN의 묘를 찾았더니
 
FN의 부모님이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운 FN의 모습이 그 곳에 있었다.
 
원더 페스티벌에서 유명한 제작자인 Y 씨의 옆에 서있는 사진.
 
프로 모델러의 마음에 들어 그 사람의 작업장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
 
작업 현장을 찍은 사진.
 
너무도 소중하게 앨범 속에 갈무리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사진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 사진 속에서 FN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요즘들어 앨범을 보고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거짓말을 했다.
 
F는 아마 알고 있었겠지.
 
집 안에는 온통 거짓말쟁이뿐이라서 괴로웠을 거야.
 
그걸 빼앗으려고 했다. 내가 바보같았어.
 
우리들이 F를 죽인 거야."
 
 
 
 
 
 
그건 아니다.
 
그 때 나는 나름대로 즐거운 계획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다른 사람의 돈이라 해도
 
1000개를 1000명이 함께 만들면 즐거운 텐데.
 
우리들이 즐거워하는 이런 것들을
 
온 세상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다는 꿈도 꿀 수 있다.
 
FN이라면 분명 손뼉을 쳐 주었을 것이다.
 
굿 아이디어라고 해 주었을 것이다.
 
착한 녀석이었으니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녀석다운 좋은 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족보다도 나를 더 믿어 주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녀석도 틀림없이 기뻐해 주었을 텐데.
 
FN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건 바로 나다.


 
 

 
FN의 부모님은 내가 FN과 닮았다는 이유로
 
나를 양자로 들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나는 몇 번이고 거절했다.
 
요즘은 매일같이 우리 집에 온다.
 
문을 쿵쿵 두드리기도 한다.
 
FN은 나에게 소중한 것을 준다고 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을 받을 수는 없다.
 
FN은 분명 자산가의 아들이라는 자리를 싫어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FN에게 용기를 주지 못했다.
 
그래서 FN의 콜렉션은 FN의 부모님에 그대로 있다.
 
방문 너머로 어서 나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벌써 반 년 이상 일하러 가지도 않았다.
 
집 주인은 내가 FN이라는 친한 친구를 잃어서
 
이상해 진 거라고 마음을 써 주고 있어서
 
집세를 체납해도 기다려 주고 있다.
 
가스비, 전기비, 인터넷 요금도 모두 지불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벌써 한 달 동안 물밖에 마시질 않았다.
 
 
 
 
 
 
 
 
방 구석에서 FN이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다.
 
나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
 
이제서야 겨우 행복이 되돌아 왔으니까.
 
FN은 분명히 죽었다.
 
그런데도 참 대단하다.
 
죽어서도 내 곁으로 와 주었다.
 
밤에만 와 주기는 하지만
 
다시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다.
 
FN이 죽고 나서 나도 폐인이 되었다.
 
PS와 PS2도 부숴버렸지만
 
부서진 프라모델은 얼마든지 있다.
 
FN은 그것들을 고쳐 주고 있다.
 
Heavy Gear를 바꿔 끼우기만 해도 
 
앞으로 한참 재미있게 놀 수 있다.
 
도색이 끝난 것들을 늘어 세운 디오라마도
 
토대가 부서져 있긴 하지만
 
지면이 붕괴된 거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멋있다.
 
 
 
 
이런 일도 있는 거구나.
 
나를 소중히 여겨 주면
 
죽은 후에도 함께 있어 주는 구나.
 
FN과 함께 놀고 있으니 익숙한 사람들이 또 왔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
 
집 주인이 이제는 문을 열겠다고 한다.
 
거 참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 F !? "
"저게 뭐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놀랐다.
 
나는 이상하게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부서진 부속품들을 손으로 꾹꾹 눌러 끼우고 있는 FN을 도왔다.
 
접착제를 묻혀 주었다.
 
 
 
"나라면 노부를 방에 가둬 두지 않아."
 
 
뒤에서 희미하게 영어 억양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FN이 프라모델을 고치는 걸 도와주고 있는데 말이다.
 
 
 
"애시당초 내가 콜렉션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러고보니 그렇다.
 
FN이 내 방에 오면 늘 오자마자 콜렉션을 가져 오라고 하곤 했다.
 
하긴 그 녀석이 귀신이 되었다면 콜렉션이 있는 곳에서 튀어 나왔을 것이다.
 
FN은 내 뒤에 있다.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건 뭐지?
 
머리가 맑아졌다.
 
FN이라고 생각했던 이것은 머리가 금발이 아니었다.
 
검은 머리였다.
 
온 몸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다.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boy, 길동무가 필요하면 나랑 같이 가자."
 
 
 
뒤에서 FN이 스윽 나타났다.
 
나와 흐릿한 FN을 번갈아 쳐다 본 후에
 
아이는 FN이 내민 손을 잡았다.
 
아이와 함께 FN은 바닥으로 스윽 사라져갔다.
 
 
 
나는 불을 켰다.
 
엉망진창인 방이 보였다.
 
고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프라모델은 모두 심하게 부셔져 있었다.
 
내 두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가장 새로운 상처에는 플라스틱 파편이 꽂혀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모두 흠칫 놀랐다.
 
FN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서는 꽈악 안아 주었다.
 
 
"FN이 왔었던 것 같습니다..."
 
"노부.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구급차 부를까요?"
 
집 주인과 F의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조잡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외국인 부부에게 양자로 가 있는 내 형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아니다.
 
거짓말은 나쁜 거지.
 
아직 완전히 헤어나오질 못했다.
 
남일처럼 여기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남일이었으면 좋겠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는 결국 FN에게 모든 것을 다 받기만 했다.
 
갚을 수도 없다.
 
그게 너무도 괴롭다.
 
 
 
 
 
 
 
 
 
 
 
 
 
 
 

 

 
 
    

으헝헝헝.. 너무 감동적이야...
그런데 오덕용어도 너무 번역하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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