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오컬트 류를 좋아해서 여러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그런 글들을 많이 읽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적 체험을 많이 한다거나, 영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내가 겪은 체험들도, 헛것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일 정도의 것들 뿐이었다.
주변에 영감을 가지고 있다는 녀석도 없고
겁이 많아서 심령 스팟같은 곳은 가고 싶지 않다.
그냥 재미로 오컬트 물을 보는 정도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 방학이었다.
어느 대학에 견학을 하러 갔다.
캠퍼스가 몇 개나 되는 학교였는데, 내가 간 곳은 약간 산 속에 위치한 캠퍼스였다.
내가 가고 싶은 학과가 지원을 잘 못 받는 모양인 지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 견학이라는 게 원래 좀 지루한 것이다.
수업 참관, 동아리 소개를 듣고 선배가 뭐라뭐라 떠들고는 끝.
일단 오컬트 류를 좋아해서 그런 동아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그런 동아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손을 들고
"오컬트 계 동아리는 없습니까?" 같은 얼빠진 질문은 할 수 없었다.
그 후, 캠퍼스를 자유롭게 돌아 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녔다.
캠퍼스 주변을 돌아 보기 위해 캠퍼스 밖으로 나왔다.
여러 가지 나무도 많고 언덕도 많고, 이 학교는 좀 아닌데...하고 생각하던 때에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봤다기 보다는 느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눈 앞이 일그러져 보인다.
눈 앞에 있는 벚나무 가로수길의 일부가 일그러져 있고
길게 늘어선 벚나무 중의 2그루의 중심부가 흐릿하다.
여름이고, 습도도 꽤 높았으니 아지랑이라고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 날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생기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그건 달랐다.
주변은 또렷이 보이는데, 그 부분만 흐릿했다.
그런데 그 가로수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더위를 먹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었는데, 더욱 더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아지랑이같은 것에서 5,6그루 떨어진 나무 옆에서
어떤 남자가 그 쪽 방향을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흰 셔츠와 청바지, 크록스 차림의 심플한 옷차림을 하고
벚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그 사람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은 위험하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바로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 남자가 이 쪽을 보며 히죽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해서 다시 캠퍼스로 돌아갔다.
학생 식당에서 식사나 하고 집에 가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학교에 이상한 놈이 한 둘 있다해도 이상할 건 없지.
한 여름인데도 긴 팔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뭐였을까.
350엔짜리 가츠동 정식을 먹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모르겠다.
혹시 그게 내 인생 최대의 심령 체험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조금 기분이 좋았다.
그런 걸로 기뻐하다니 나는 조금 변태 기질이 있는 건 지도 모르겠다.
"재밌는 걸 봤군."
갑자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 보았다.
그 남자였다.
나와 같은 가츠동 정식이 든 쟁반을 들고 내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남자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씩 그런 게 있지."
그렇게 말하고는 태연하게 된장국을 먹었다.
"놀랐나 보군. 아니면 무서워 하는 건가?
그 표정은 대체 무슨 감정이지?"
또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했다.
"사람의 시각이라는 건 뇌의 후두엽이라는 곳에서 인식 하는 거야.
빛은 렌즈를 통과해 시신경을 거쳐 인식되지.
그런데 그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면 어떡하지?
눈에 보이고 있지만, 보려고 하질 않아.
보이지만, 뇌가 보이게 놔 두질 않아.
사람은 인식된 것만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렇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거짓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분명히 나이고, 사진에 찍혀 있는 나 또한 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인 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마 아무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나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가츠동은 정말로 이런 형상을 이루고 있는 걸까.
이 색깔이 맞는 걸까.
그걸 단언할 수 있나?
그건 이거랑 같은 거야."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너 견학하러 온 거지?
그게 보였다는 건 나름대로 좋은 거야.
너, 이 학교로 와라."
그 남자는 그 아지랑이를 보고 있었을 때처럼 또 히죽거렸다.
견학하러 왔다는 건 교복을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직 다 먹지 않은 가츠동을 남기고 "먼저 실례하겠습니다"하며 도망쳤다.
이런 학교에 내가 왜 입학해야 하지?
너무 위험하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진 위험인물이었다.
세상엔 이런 변태도 있는 거구나 알게 되었다.
그 후,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보험삼아 지원해 둔 그 학교에 억지로 입학하게 된 것은
그 이듬 해 봄의 일이다.
+ 애니메이션 1화같아...
어서 2화를 내놓으란 말이야.....
이건 2화부터 엄청 흥미진진할 패턴이란 말이야...
친구 B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다.
실은 대학 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 일에 대해 최근 알게 된 것이 있어서 글을 쓴다.
B의 대학 시절 전 남자친구 E에 대해 쓴 적이 있다.
E는 우리와 함께 노는 그룹이 아니었기에, 우물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B와는 졸업 직전에 취직을 이유로 헤어졌다고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B를 드나들고 있는 그것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를 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B가 E에게서 받은 반지를 친구들에게 자랑한 적이 있었다.
금과 은이 함께 섞인 반지였고, 여자애들 말을 들어보면 꽤 좋은 거였다는데,
A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물 사건도 있고 해서, 나는 나중에 살짝
"저 반지에 뭔가가 있는 거야?"하고 물어보았다.
"응.... 좀 위험한 걸 지도 몰라. 어쩌지...
혹시 너 그런 거 쫓아낼 수 있는 사람 알아?
역시, 모르겠지...."
나는 "그런 것이 보이는 사람"은 A이외에는 아무도 몰랐기에,
A에게 그렇다고 대답하자,
A는 그런 것들이 보이긴 하지만,
지금껏 위험한 것들은 피하며 살아 오기만 해서,
알고 있는 영능력자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B도 안 빌려 주려고 하겠지...
영능력자한테 B를 데리고 가면,
B의 그것과 싸움이 날 지도 모르고..."
만약 B에게 그 반지가 영적으로 위험한 거라고 말하면,
B는 분명 재미있어하며 직접 가져가려고 할 거라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나는
"그래도... B한테는 그게 있으니까 괜찮지 않아?" 하고 물었지만, A는 복잡한 표정으로
"음...... 글쎄....."
하고 그 대화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다음 날, 학교 안에서 A가 사고로 다치게 되었다.
유리에 베여 학교 보건센터에 옮겨진 A는
함께 있던 같은 과 학생에게
자신의 짐을 보건센터와 가장 가까운 강의실에 갖다 두어 주면, 자신이 가져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그 녀석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무래도 지갑이나 귀중품은 도난당할 위험이 있으니
내가 맡아주기로 했다.
강의실로 가자, 아무도 없고 A의 가방만이 덩그러니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눈에 익은 가방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 가방일 수도 있어서 살짝 가방 안을 열어
이름이 쓰인 물건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지갑이 든 주머니 안에 작은 비닐봉지에 든 반지가 보였다.
전날 B가 자랑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B의 반지인가? 이걸 왜 A가 가지고 있지?
그냥 같은 물건을 산 걸 지도 모른다.
아니면 A가 몰래 빌려와서 반지에 붙은 걸 쫓아내려 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갑 안의 면허증을 확인하고 나서,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나오려 하자
뒤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창틀 쪽에 회색빛 고양이가 있었다.
야옹~
다시 한 번 울고는 창틀에서 바깥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나서 잠시 후에 깨달았다.
저 고양이, 아까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여기 4층인데 바깥에 나뭇가지가 있었던가?
서둘러 창문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창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뭇가지가 뻗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건물 밖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4층에서 뛰어내려도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A의 가방을 두었던 곳으로 갔다.
깜짝 놀랐다.
아까는 분명 없었는데, 가방에 엄청난 할퀸 자국들이 나 있었다.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다시 한 번 발치에서 "야옹~" 하는 목소리가 나고
그제서야 나는 A가 계속 신경쓰고 있던 그 반지가
내가 들고 있는 가방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그리고 또 다시 "야옹~"하는 울음소리와 어떤 소리가 났다.
발치를 내려다보니, 내 신발끈 매듭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역시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야옹~ 야옹~ 야옹~
그 울음소리는 꽤 가깝게 들렸고, 점점 더 불길한 느낌으로 변해 갔다.
식은 땀을 계속 흘리기 시작하는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울음소리에,
음침한 느낌의 사람 말소리가 겹쳐졌다.
"........같은 건.... 죽어 버려....
죽어 버리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그 목소리는 또렷하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림이 있었다.
굳어버린 나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이 울리고 있는 동안에도 발치에선 계속 보이지 않는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신발과 가방에선 찌익찌익 소리가 나고,
내려다보니 왠지 바닥에도 흠집이 더 많이 생긴 것 같았다.
"네. 여보세요."
"B야?? 난데, A 얘기 들었어?"
고맙게도 B는 학교 안에 있었다.
서둘러 A가 다친 걸 이야기해 주고, 가방을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B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A의 가방을 들고 온 힘을 다해 달려 B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그 동안에도 끝없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나지막이 "죽어버려"나 "죽어 버리면 좋을 텐데..."하는 여자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건물에서 빠져나오자, 슈욱하고 다리 사이를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발이 꼬여서 콰당 넘어지고, 세워져 있던 자전거에 부딪쳤다.
"괜찮아??"
B가 큰소리로 물으며 달려 왔다.
"손 좀 봐! 다리에서도 피가 나잖아?"
B가 소란스럽게 나를 부축하며 짐을 들어 주고,
정신을 차려 보니 고양이 울음소리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다리의 상처는 자전거에 부딪친 것이 아니라, 손톱에 긁힌 상처였다.
A의 상처도 심하지 않았고, A의 가방 속에 있던 반지는 A가 B에게 빌린 것이었다.
B의 반지와 같은 모양의 반지가 너무 갖고 싶으니
가게에 보여 주고 "이런 반지가 갖고 싶다"고 말하려는데 견본품이 필요하다고 말해서 빌렸다고 한다.
내가 그 가방을 B에게 맡겼다고 말하자,
A는 "아.... 그래..." 말하고는 고양이와 여자 목소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왜 우리 애가 죽은 거야!!
나도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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