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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Thu)

 

 

1년 전 이야기이다.

 

친구가 추천해 줘서 어떤 온라인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온라인 게임은 커녕, 채팅도 해 본 적 없던 나는

 

우연히 어느 대규모 길드에 들어가

 

그 곳의 고참 플레이어 몇 명에게 플레이 방법과 채팅 방법을 배웠다.

 

내 캐릭터는 모두의 도움 덕분에 순조롭게 성장했고,

 

늘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고, 내가 초보자이다 보니 

 

나는 길드 내에서 꽤 귀염받는 존재였던 것 같다.

 

 

그 길드원들 중에 A가 있었다.

 

A는 그 게임도 오래 해 왔고, 레벨도 길드원 중에서 선두를 다툴 정도였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 아이템을 몇 개 씩이나 가지고 있었고,

 

모두에게 주목받는 존재였다.

 

A는 나를 유달리 신경 써 주었고,

 

자주 레벨업을 도와 주거나, 사용하지 않게 된 아이템을 흔쾌히 주고는 했다.

 

 

 

내가 소속한 길드는 다들 사이가 좋고, 

 

진짜 친구사이인 사람들도 여럿 있어서

 

게임을 하면서 스카이프로 이야기하거나

 

메일 주소를 교환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길드원 대부분이 관동, 관서권에 집중되어 있었고

 

홋카이도에 살던 나는 한 번도 참가해 본 적 없어지만,

 

오프모임도 종종 개최되었다.

 

 

인터넷 상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던 나는

 

A를 포함한 사이좋게 지내던 멤버 몇 명과 서로

 

성별, 직업 등의 개인정보와 메일 주소를 교환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전화번호나 자세한 주소까지 알려 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A는 관서에 사는 대학생이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게임에 접속해 있는 동안 늘 A와 함께 플레이하게 되었다.

 

길드 헌트(길드원들과 함께 사냥을 할) 때는 물론이고

 

가끔 혼자 놀고 있을 때에도 A가 귓말을 걸어 왔다.

 

 

[ OO 발견!!(´・ω・`) ]

 

[ 지금 뭐해? 혼자 있으면 내가 그리 가도 돼?(´・ω・`) ]

 

[ 혹시 누구랑 같이 있어?(´・ω・`) ]

 

A에게서 오는 귓말은 늘 (´・ω・`)라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성실하게 대꾸를 했지만

 

어느 날 다른 친구와 꽤 혼잡한 사냥터에 있어서 귓말에 대꾸를 해 줄 틈이 없어, 

 

미안하긴 하지만 나중에 답장을 해주려 생각하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귓말이 아닌 보통 채팅(그 화면 안에 있는 모든 이가 볼 수 있는 채팅)으로

 

 

「(´・ω・`)」 

 

 

꽤 먼 사냥터에 있었을 A가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냥을 중단하고, 귓말에 대꾸해 주지 못한 것을 사과하자,

 

 

[괜찮아. OO는 나랑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랑 있는 게 더 즐거운 거지(´・ω・`) ]

 

하고 바로 로그아웃.

 

 

나와, 함께 있던 친구는 어이가 없었다.

 

이 때부터 나에 대한 A의 집착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바로 A에게서 귓말이 날아왔다.

 

 

「(´・ω・`)」 

 

 

게임에는 '친구 등록'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친구 리스트에 등록해 놓은 사람이 로그인 하면

 

리스트에 적혀 있는 이름이 반짝이고, 

 

검색을 하면 어느 맵에 있는 지 바로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A는 그 기능을 사용해  내 접속 상황과 위치를 늘 감시하게 되었다.

 

나는 A가 무서워 져서 잠시 게임을 삼가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매일같이 폰메일이 왔다.

 

 

 

「왜 요즘 접속 안해?(´・ω・`)」 

「○○가 없으니까 심심해(´・ω・`)」 

「혹시 내가 싫어졌어?나는 이렇게나 좋아하는데(´・ω・`)」 

 

 

 

처음엔 대충대충 답장을 보냈지만, 나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A는 대학생이고, 나는 사회인이다.

 

근무 중이건 휴식 중이건 한밤 중이건 상관없이 날아오는 폰메일에 짜증이 났다.

 

어느 날 굳게 마음 먹고 A에게 이런 폰메일을 보냈다.

 

 

 

[난 게임하고 있을 때는 즐겁게 놀고 싶고,

 

A한테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게 아니야.

 

한밤 중에 폰메일 보내는 것도 폐가 되니까 그러지 말아 줘.]

 

 

 

그러자 A에게서는 역시

 

「(´・ω・`)」

 

라는 답장이 왔다.

 

이젠 지긋지긋하다.

 

 

 

그 이후 A에게서는 폰메일이 날아 오지 않게 되었고

 

게임도 거의 접속하지 않게 되었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지 3주 정도 지났을 무렵.

 

사이좋게 지냈던 어느 길드원에게서 메일을 받았다.

 

 

[요즘 안 보이던데, 바쁜가 봐?

 

다들 보고싶어 하니까 가끔은 접속 해^^

 

아참, A도 학교 그만두는 것 때문에 바쁜 모양인지

 

통 접속을 안 하더라구]

 

 

A가 학교를 자퇴했다는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한가해 지면 들어가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그 일은 곧 잊어버렸다.

 

 

 

나는 당시에 어떤 자격증 학원의 강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주로 무료 체험수강 관련 이벤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무료 체험수강을 한 날에는 

 

수업이 끝난 후 수강자들에게 앙케이트를 받고 있었다.

 

수업의 느낌이나 강사의 인상, 이름, 주소 등을 웹상에 입력하는 간단한 앙케이트이다.

 

앙케이트를 회수하고 결과를 데이터로 정리하는 것도 내 일이라서

 

그 날도 평소처럼 앙케이트 결과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크롤 휠을 내리던 손이 멈추고,

 

내 시선은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수업의 느낌】 

(´・ω・`) 

 

【강사의 인상】 

(´・ω・`) 

 

【이름】 

A의 캐릭터명 

 

【주소】 

관서 

 

 

 

 

 

 
 

 

온 몸의 털이 쭈뼛 섰다.

 

수강자 중에 A가 있었던 것이다.

 

A가 아직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때, 아무 생각없이 

 

홋카이도의 가장 큰 도시에서 역앞에 있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무서워 져서 일을 빨리 끝낸 후에 

 

집으로 가지 않고, 고속버스를 타고 200km 떨어진 부모님 집으로 피신했다.

 

마침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친했던 길드원 몇 명에게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게임을 탈퇴할 것이라고 알렸다.

 

A의 근황을 아는 사람의 정보에 의하면

 

A는 홋카이도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 후 바로 전화기를 바꾸고, 결혼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홋카이도를 떠났다.

 

 

 

 

 

뭣도 모르고 개인정보를 말하고 다닌 내 잘못도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게임 속 친구때문에 그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그 이후로 (´・ω・`) 만 봐도 치가 떨린다.

 

이제 두 번 다시 온라인 게임은 안 할 것이다.

 

 

 

 

 

 

 

 

 

 

 

 

 

 

 

 

 





 

seal_touching.jpg

+간만에 간결하고 군더더기없이 상큼하게 현대적으로 무서운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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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Thu)

 

 

 

지난 번에 친구 B에게 깃들어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다.

 

그 후, 다시 B와 연이 닿아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난 이야기에 대한 상황.

 

 

 

・영적인 것들이 '보이는' A의 말에 의하면,

B의 몸을 왔다갔다 하는, 보통 귀신과는 다른 존재가 있다.(마치 기생충같은)

 

・B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다른 영적인 것들은 거의 그것을 피하며

B는 심령 현상을 느끼지 못한다.

 

・우선 당시 A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B를 지켰다.

 

・그렇지만 A가 느끼기에는, 도저히 호의로 지켜주는 것이라 볼 수 없다.

 

・ 강력한 영과 B의 그것이 싸울 때에 B 본인은 곯아 떨어지게 된다.

 

 

 

 

 

그 후, A가 다른 친구(F)와 함께 B의 집을 찾아가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도 있는 지, B의 아이들은 무사한 지 신경이 쓰였다는 것이다.

 

다녀와서 한 이야기를 들으니

 

"...... 가는 게 아니었어...." 라고 후회하는 듯 했다.

 

 

A가 말하길, B는 교외의 약간 한적한 곳에 살고 있고,

 

기꺼이 A와 F를 맞아 주었다.

 

마침 휴일이라 B의 남편과 아이들도 있어서 인사를 나누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그것은 아직 B의 안에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더욱 커져 있었다.

 

커졌다고 할까, 강해졌다고 할까, 분명해졌다.

 

"모양이나 얼굴같은 윤곽은 안 보이지만, 

 

안개라고 치면 '짙어졌고', 그림자로 치면 더 '입체적'이 되었어.

 

기운도 강해 졌고, 풍기는 냄새랄까 방사능같은 게 더 늘어나서, 솔직히 무서웠어."

 

 

 

 

A와 F가 그 동네 역에 내렸을 때부터, 그 거리에 굉장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F도 불안한 듯

 

"...여기 좀 이상한 것 같아. 애들이 많은 동네 치고는 조용해서 그런가?

 

약속시간보다 좀 빨리 오긴 했는데, 다른 데 들어가지 말고 바로 B 집으로 가는 게 어때?"

 

라고 말할 정도였다.

 

역에서 B의 집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동안

 

A는 깜짝 놀랄 정도로 수많은 안 좋은 영들을 보았다고 한다.

 

잔혹하게 죽어서 성불하지 못한 영혼들, 성질 나쁜 동물령 등이 우글우글했다.

 

 

 

 

"거리 전체가 원념으로 범벅이 된 것 같아서 무서웠어.

 

나 혼자였으면 어떻게든 물리쳤을 텐데,

 

F한테 그런 얘기 했다가 이상한 눈길 받는 것도 싫었어.

 

이미 뒤에 들러붙어 따라오고 있는 것도 있었는데,

 

B의 집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그대로 걸음을 서둘렀지."

 

 

 

그래서 서둘러 B의 집에 도착하자, 그 안에는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B의 집 안은 B가 가지고 있는 그것의 기운으로 가득차 있는 것 외에는 깔끔해서

 

오히려 안심했다고 한다.

 

 

"B의 남편과 아이는 평범했어.

 

가끔 평생 그런 것들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B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그렇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거야.

 

B의 남편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수호령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수호령조차 그 집에 붙어있질 못한 거겠지."

 

 

수호령이 없다니, 괜찮은 건가.

 

나는 B가 곁에 없으면 수호령이 돌아 오는 지 물어 보았지만,

 

A는 그 부분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오랜만이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F가 적당히 신축 건물이고, 입지도 좋고, 널찍하고 괜찮은 방이라고 칭찬하자

 

B가 말하길 원래 그 집은 다들 기피하는 비인기 주택이었다고 한다.

 

입주자가 몇 번이고 바뀌어서 B가족이 그 집에 입주하는 열 몇번째 가족이었다고 한다.

 

거기서 사고나 자살 사건도 몇 번 있었고,

 

입주자에게 불운이 이어져서 다들 꺼리는 집이 되었기에 집값이 몹시 쌌다.

 

 

"안내해 주기는 했지만, 부동산 중개업자도 그리 권하진 않았어.

 

주변 사람들도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이사 나오라고 걱정해 줬어.

 

근데 우리 남편도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쓰고, 

 

나는 오히려 귀신이 있으면 만나보고 싶을 정도니까~."

 

 

 

B는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결국 그런 건 말뿐이더라구.

 

이 집에 이사온 지 반 년쯤 됐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

 

다른 집에도 사고는 일어나고, 건널목에서 차에 치인 아이도 있고,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한 건 다들 똑같지 뭐.

 

공교롭게 이 방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많아서

 

저주받은 집이네 뭐네 하는 말이 붙은 것 같아."

 

 

 

F는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A는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얼굴 표정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A가 말하길,

 

그 방은 정말로 '저주받은 방'이었다고 한다.

 

영적인 위치 관계라던가, 가까운 곳에 늪이나 바다가 있던가, 집의 방향이라던가

 

그런 여러 가지 요인이 안 좋은 것들을 끌어 들이는 포인트를 만드는 일이 있다고 한다.

 

 

 

 

"건물 안에서도 밀폐성이 높은 방이라면, 더욱 더 그런 것들이 빠져 나가질 못해.

 

그 곳에 안 좋은 것들이 모이니까, 반면에 다른 곳은 깨끗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곳에 B가 살기 시작한 거야.

 

 

 

A의 표현을 빌리자면

 

 

 

"온 마을의 바퀴벌레, 지네, 말벌을 모아 놓은 해충으로 가득한 방 한가운데에

 

갑자기 해충 퇴치 폭탄을 놓은 거야."

 

 

그리고 A는 이렇게도 말했다.

 

 

"B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두 번 다시 그 집 근처에는 안 갈 거야.

 

그것들이 더욱 흩어져서 좀 안정이 될 때까진 아마 몇 년 정도 걸리겠지."

 

 

 

 

A의 생각으로는, B의 남편과 아이는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함께 살면서 B의 그것의 기운이 스며들고

 

웬만한 것들은 알아서 피해갈 것이고, 원래 영감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돌아갈 때에 B의 남편이 역까지 배웅해 주었는데

 

길에 있던 나쁜 것들이 가까이 다가오질 못했다고 한다.

 

 

문제는, 아마도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이웃들일 것이다.

 

씁쓸해 졌다.

 

이 곳에 글을 써서라도 후련해 지고 싶었다.

 

아마 A도 그럴 것이다.

 

A는 그런 것들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을 다 물리칠 만한

 

강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내가 몇 번이고

 

아무 것도 못 보지만 위험은 저절로 피해지는 B가 부럽지 않냐고 물었을 때,

 

A는 분명히 고개를 저었다.

 

"난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런 게 내 몸 속에 살고 있는데도 느껴지지조차 않는다니,

 

죽어도 그런 건 싫어."

 

 

보통 귀신에 비해 B의 그것이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정념이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느낀 위화감에 대해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알기 쉽게 말하자면,

 

영혼이란 건 어떤 의미로 마음이 떨어져 나와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야.

 

사람이건 동물이건 반드시 마음이 보이지.

 

"살고 싶다"던가, "괴롭다"던가 그런 간단한 거라도.

 

그 정념을 바탕으로 이승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지키기도 하는 거니까.

 

그런데 B의 그것은 그게 안 보여.

 

뭔가 의지가 있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긴 하는데,

 

그 근원이 되는 마음이 전혀 없어.

 

B에게서 나올 때도, 다시 돌아갈 때도, 우물에서 나온 것과 싸울 때조차

 

전혀.

 

보통 귀신이라고 하기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seal_ganji.jpg

 

+뭔가 A 이 분, 멋있다... 그대의 담담함....

네이트 판에서 인기 끌었던 작가 분들의 전형적인 영감있는 친구style...

 

2011/05/12 (Thu)

전 말이에요, 무서운 얘기 하는 걸 좋아해요.
몇 명인가 모이기 시작하면,

늘 "사실은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어..."
이런 식으로 괴담을 시작하죠.
내가 영감이 있다는 듯이 말을 해요.
듣는 녀석들도 그런 걸 진심으로 믿진 않겠지만, 어쩐지 그게 더 재미있으니까요.
 
어느 날 내가 소속되어 있는 제미(세미나)랑 다른 제미랑 합동으로 바베큐 파티를 하게 되었어요.
먹고 마시고 실컷 떠드는 동안에 점점 날이 저물어 왔죠.
그렇게 되면 내 차례.
언제나처럼 "실은 말이야.."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했죠.
한 명이 이야기를 끝내면 또 한명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완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어쩌다가 이야기가 뚝 끊겼을 때 이렇게 말하죠.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말이지, 영혼들이 모인다고들 하잖아?
실은 말이지, 지금도 와 있어. 저기, 나무 있지?
지금, 그 나무 그림자쪽에서 어떤 남자가 물끄러미 이 쪽을 보고 있어." 하고.

그렇게 말하면 모두들 싫은 표정을 해요.
"지어낸 말이지? 그거"라고 하거나 개중에는 정말 무서워하는 녀석도 있고.
뭐 나는 그런 반응을 보는 게 즐거우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만요.
 

어찌저찌하다가 이제 시간도 시간이고, 슬슬 접으려고 했죠.
"수고했어"라고 말하며 각자 집에 가려고 하던 때에,
어떤 여자아이 한 명이 나를 향해 걸어왔어요.
본 적도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다른 제미의 애였겠죠.
모두들 얘기하고 있을 때 제일 구석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애였는데,
그 애가 나에게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너 사실은 영감 같은 거 없지?" 하고.


물론 그야 그렇지만 대놓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조금은 열받아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애가
"너는 아까 저 나무 그림자에서 어떤 남자가 이 쪽을 보고 있다고 했지만,
그런 남자는 아무데도 없었어." 라고 하는 거에요.

그야 그렇죠. 그건 분위기를 띄우려고 적당히 말해본 것 뿐이니까.
그러더니 그 애는 이렇게 덧붙였어요.


"네가 말했던 나무에는 그런 남자가 없었지만,
거기서 두 개 건너에 있던 나무에, 어떤 여자가 거꾸로 매달려 있었어.
그 사람, 엄청나게 무서운 얼굴로 너를 노려보고 있었어.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면서.
그 사람말이야, 너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

지금 네 허리에 매달려있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 그 애는 바로 돌아가 버렸어요.
나는 그런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죠.

'뭐야 쟤. 재수없는 소리하고 있네.'

겁을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겁먹어 버렸네.
그건 좀 분했어요.
근데 그 얘기를 믿은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좀 신경쓰였어요.
그래서 다음 날 학교에 가서 한 번 더 그 애를 만나 말을 해 보려고 했죠.
그런데 제미 녀석들에게 물어 봐도 "그런 애 몰라."라고 하는 거에요.
"뭐? 있었잖아? 머리길이는 이 정도에, 이런이런 옷 입은 애 말이야."
라고 그 아이의 특징을 설명했지만, 역시 모른다고들.
다른 제미 애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어요.
그건 대체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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