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친구 T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올 해 여름, T는 가족과 함께 카가와의 깊은 산 속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갔었다.
카가와는 강우량이 적어서 옛부터 저수지가 많았는데,
할아버지 댁도 저수지 사이에 끼인 길을 지나고, 비탈을 올라 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을 정면으로 두고, 왼쪽에 보이는 저수지는
다른 저수지에 비해 몇 배는 더 크고, 한가운데에는 약 두평 넓이의 조그마한 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섬 위에는 비석이 있었다.
그 비석은 마을을 구한 기우사의 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에도 시대의 어느 해에, 몇 개월 간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에 줄 물은 커녕, 사람들이 마실 물조차 부족했던 때에
떠돌던 법사가 마을을 찾아 왔다.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그 법사가 기도를 올리자
며칠 안에 마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T가 할아버지 댁에 온 지 며칠 후,
오후까지 늦잠을자던 T는 밤 산책에 나섰다.
걱정하시던 할머니에겐 적당히 둘러대고
손전등을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시골이다 보니 가로등도 적고, 손전등으로 비추지 않으면 발밑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위험했지만
바람이 상쾌해서 기분좋게 산책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수지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왼쪽에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왼쪽 저수지 한가운데에 비석이 서 있는데,
그 위에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할아버지 댁을 나설 때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을 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 실루엣이 이 쪽을 향했다.
"자네는, 그 집의 사람인가?"
하고 턱짓으로 할아버지 댁 쪽을 가리켰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서, 자기도 모르게 T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가."
실루엣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전등으로 비추고 있지도 않은데도, 사람의 윤곽이 확실히 보였다.
실루엣이 수행 승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머리에 쓰고 있는 작은 모자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옷은 갈색 계열같았다.
기우사의 유령인가?
오봉이기도 하고,(역자 주:일본의 추석인 '오봉'날에는 죽은 조상들이 잠시 돌아온다고 믿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우사가 이 쪽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10미터는 떨어져 있었던 기우사의 손이 T의 목을 움켜쥐었다.
기우사는 T를 그대로 눈 앞까지 끌어 당겼다.
T는 그 때 처음으로 가까이서 기우사의 얼굴을 보았다.
몹시 분노한 표정에, 얼굴에는 긁혀서 부어오른 흉터가 있었다.
오른 쪽 눈꺼풀의 절반, 콧대, 귀의 일부, 뺨 가죽 등
얼굴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다.
"길었다. 참으로 길었다."
T는 기우사의 팔을 양 손으로 움켜 쥐고 어떻게든 뿌리쳐 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듯 하더니, 곧 등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 샌가 저수지 물가에 있는 대숲에 처박혀 있었다.
서둘러 도망치려 했지만, 기우사가 T의 발을 붙잡고
다시 저수지 한가운데까지 끌고 갔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닮은 듯도 하구나.
이 마을에 태어난 것으로 네 운은 다한 줄 알거라."
"잠깐만, 잠깐만. 무슨.. 말인 지..나는. 몰라"
T가 어떻게든 말을 쥐어 짜내 보았지만,
기우사는 들은 체도 않고
T를 잡은 팔을 한 바퀴 휘익 돌리더니,
도로 쪽으로 T를 내던졌다.
왼쪽 어깨가 도로 밑 콘크리트 블럭에 부딪쳤다.
기우사는 그 왼쪽 어깨를 움켜 쥐고, 놀리듯이 흔들어 댔다.
"으하하하하. 아픈가? 아픈 모양이로구나. 나는 즐거웁다!"
그리고 또 다시 T를 내던졌다.
자신의 몸이 붕 떠 있다는 것을 느낀 T가 아래를 보자,
그 곳은 도로 아스팔트 위였다.
기우사는 절망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T를 보고 배를 잡으며 웃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T의 오른 발이 역방향으로 꺾였고,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뇌진탕에 걸렸는지 구역질이 났다.
"제발 그만하세요. 제발....."
오른 손으로 싹싹 빌고 있는 T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기우사는 자신의 눈앞으로 T를 끌어 당겼다.
기우사는 지긋이 T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T의 손가락을 꺾었다.
"으아아아아악!!"
"으하하하하하. 멋진 목소리로구나. 암 그래야지."
그리고 또 한 개의 손가락을 꺾었다.
눈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 두 개가 꺾인 것을 보고 T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덜 꺾였구만."
그렇게 말하고 기우사는 T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잇몸 째로 뜯어낼 기세로 어금니를 하나 뽑아냈다.
"어이쿠, 잘못 뽑아내었구나."
이번에는 주먹 째로 입 안에 쑤셔 넣고는
"귀찮다. 다 뽑아 내 버려야겠다."
턱까지 다 뜯어내려는 듯 힘을 주었다.
거의 기절 상태였던 T는 또 다른 고통에 온 몸을 떨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 때,
딸깍, 타앙!!
우리는 별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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