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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Fri)

대학 친구 T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올 해 여름, T는 가족과 함께 카가와의 깊은 산 속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갔었다.

카가와는 강우량이 적어서 옛부터 저수지가 많았는데,

할아버지 댁도 저수지 사이에 끼인 길을 지나고, 비탈을 올라 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을 정면으로 두고, 왼쪽에 보이는 저수지는

다른 저수지에 비해 몇 배는 더 크고, 한가운데에는 약 두평 넓이의 조그마한 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섬 위에는 비석이 있었다.

 

그 비석은 마을을 구한 기우사의 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에도 시대의 어느 해에, 몇 개월 간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에 줄 물은 커녕, 사람들이 마실 물조차 부족했던 때에

 

떠돌던 법사가 마을을 찾아 왔다.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그 법사가 기도를 올리자

 

며칠 안에 마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T가 할아버지 댁에 온 지 며칠 후,

 

오후까지 늦잠을자던 T는 밤 산책에 나섰다.

 

걱정하시던 할머니에겐 적당히 둘러대고

 

손전등을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시골이다 보니 가로등도 적고, 손전등으로 비추지 않으면 발밑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위험했지만

 

바람이 상쾌해서 기분좋게 산책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수지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왼쪽에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왼쪽 저수지 한가운데에 비석이 서 있는데,

 

그 위에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할아버지 댁을 나설 때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을 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 실루엣이 이 쪽을 향했다.

 

"자네는, 그 집의 사람인가?"

 

하고 턱짓으로 할아버지 댁 쪽을 가리켰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서, 자기도 모르게 T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가."

 

실루엣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전등으로 비추고 있지도 않은데도, 사람의 윤곽이 확실히 보였다.

 

실루엣이 수행 승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머리에 쓰고 있는 작은 모자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옷은 갈색 계열같았다.

 

기우사의 유령인가?

 

오봉이기도 하고,(역자 주:일본의 추석인 '오봉'날에는 죽은 조상들이 잠시 돌아온다고 믿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우사가 이 쪽을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10미터는 떨어져 있었던 기우사의 손이 T의 목을 움켜쥐었다.

 

기우사는 T를 그대로 눈 앞까지 끌어 당겼다.

 

T는 그 때 처음으로 가까이서 기우사의 얼굴을 보았다.

 

몹시 분노한 표정에, 얼굴에는 긁혀서 부어오른 흉터가 있었다.

 

오른 쪽 눈꺼풀의 절반, 콧대, 귀의 일부, 뺨 가죽 등

 

얼굴 곳곳이 파손되어 있었다.

 

"길었다. 참으로 길었다."

 

T는 기우사의 팔을 양 손으로 움켜 쥐고 어떻게든 뿌리쳐 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듯 하더니, 곧 등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 샌가 저수지 물가에 있는 대숲에 처박혀 있었다.

 

서둘러 도망치려 했지만, 기우사가 T의 발을 붙잡고 

 

다시 저수지 한가운데까지 끌고 갔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닮은 듯도 하구나. 

이 마을에 태어난 것으로 네 운은 다한 줄 알거라."

 

 

"잠깐만, 잠깐만. 무슨.. 말인 지..나는. 몰라"

 

T가 어떻게든 말을 쥐어 짜내 보았지만, 

 

기우사는 들은 체도 않고 

 

T를 잡은 팔을 한 바퀴 휘익 돌리더니,

 

도로 쪽으로 T를 내던졌다.

 

왼쪽 어깨가 도로 밑 콘크리트 블럭에 부딪쳤다.

 

기우사는 그 왼쪽 어깨를 움켜 쥐고, 놀리듯이 흔들어 댔다.

 

"으하하하하. 아픈가? 아픈 모양이로구나. 나는 즐거웁다!"

 

그리고 또 다시 T를 내던졌다.

 

자신의 몸이 붕 떠 있다는 것을 느낀 T가 아래를 보자,

 

그 곳은 도로 아스팔트 위였다.

 

기우사는 절망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T를 보고 배를 잡으며 웃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T의 오른 발이 역방향으로 꺾였고,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뇌진탕에 걸렸는지 구역질이 났다.

 

"제발 그만하세요. 제발....."

 

오른 손으로 싹싹 빌고 있는 T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기우사는 자신의 눈앞으로 T를 끌어 당겼다.

 

기우사는 지긋이 T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T의 손가락을 꺾었다.

 

"으아아아아악!!"

 

"으하하하하하. 멋진 목소리로구나. 암 그래야지."

 

그리고 또 한 개의 손가락을 꺾었다.

 

눈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 두 개가 꺾인 것을 보고 T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덜 꺾였구만."

 

그렇게 말하고 기우사는 T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잇몸 째로 뜯어낼 기세로 어금니를 하나 뽑아냈다.

 

"어이쿠, 잘못 뽑아내었구나."

 

이번에는 주먹 째로 입 안에 쑤셔 넣고는

 

"귀찮다. 다 뽑아 내 버려야겠다."

 

턱까지 다 뜯어내려는 듯 힘을 주었다.

 

거의 기절 상태였던 T는 또 다른 고통에 온 몸을 떨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 때,

 

 

 

 

딸깍,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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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Fri)
             내가 14살 때였다.

겨울 방학 때, N현에 있는 삼촌의 별장에 놀러 가기로 했다.

원래는 여자친구와 둘이 가려고 했다는데, 헤어지게 되어,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나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아침일찍부터 삼촌이 차를 가지고 나를 데리러 왔다.

차로 8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지만, 삼촌과 수다도 떨고 음악도 들으며 즐겁게 지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산장 느낌의 멋진 별장이 있었다.

삼촌의 별장 가까이에 다른 별장도 두 세 채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는 정원에서 바베큐를 해서 먹었다.

공기좋은 산 속이라 그런 지, 별로 좋은 고기를 구운 것도 아니었지만 무척 맛있었다.



tv도 보고 게임도 하며 놀다 보니 밤이 깊어졌다.

그래서 삼촌은 나에게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삼촌은 이야기를 잘 해서 무서운 이야기들을 무척 실감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삼촌이 갑자기 생각난 듯

"뒷산에는 절대 들어가지 마." 라고 말했다.

그 지역 사람들도 여간해선 뒷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근처 다른 별장의 사장이 옛날에 그 산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놀다 보니 어느 새 새벽 5시가 되어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으로 햇살이 새어 들어와 잠에서 깼다.

벌써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다.

목이 말라 1층에 물을 마시러 내려갔다.

내려 가는 도중에 삼촌이 자고 있는 방을 들여다 보니,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조금 추웠지만 상쾌한 아침이었다.

역시 산 공기는 도시랑 다르구나.

내 방으로 돌아가 베란다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내 방 베란다에선 뒷산이 바로 보였다.

갑자기 방 안에 망원경이 있던 게 생각났다.

풍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져서, 망원경을 베란다로 가져 왔다.

역시 비싼 물건이라 그런 지, 정말 먼 곳에 있는 것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산의 나무에 앉아 있는 새들까지 똑똑히 보일 정도였다.

30분 정도를 그렇게 계속 들여다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 뒷산의 나무들을 보고 있는데, 내 시야에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같다.

 

 

 

 


등이 보인다.

머리카락이 없다.

그런데 온 몸을 끊임없이 흔들고 있다.

'이 지역 사람인가? 전통 춤을 추는 건가?'

손에는 열쇠를 들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이상한 것은, 한겨울인데도 벌거벗고 있다는 것.

그런 마츠리(지역 축제) 기간인가? 그런데 한 명밖에 없네.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이 쪽에 등을 보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저걸 봐서는 안 된다."

본능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람인 것 같긴 한데, 조금 이상한 사람 같다. 좀 기분나쁘다.

하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망원경의 확대 배율을 최대로 맞췄다.

뒷통수는 반질반질했고, 하얬다.

왠지 오싹함을 느낀 순간, 그 녀석이 춤을 추며 천천히 이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 만한 얼굴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었다.

코도 있고, 입도 있다.

그러나 눈썹이 없었고, 미간 부분에 눈이  딱 하나 달려 있었다.

그것도 세로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외눈박이다.

그 녀석과 망원경 렌즈를 통해 눈이 마주쳤다.

입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웃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악!!!!!!!"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저 죽고 싶었다.

이상할 정도의 우울함이 나를 덮쳤다.

'죽고 싶다.... 죽고 싶어....'

미친 듯이 방 안을 뛰쳐다니고 있었는데, 삼촌이 뛰어 올라 왔다.


"왜 그래?"

"괴...괴물!!"

"뭐?"

"망원경!!! 뒷산!!!"


삼촌이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으으으..."

삼촌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감싸쥐었다.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울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된 나는 삼촌에게 물었다.



"저게 대체 뭐야?"

"OO코... OO코....."

삼촌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껴 울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날 것 같아, 처음으로 힘껏 삼촌의 뺨을 때렸다.

10초...20초...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자, 삼촌이 나를 바라보았다.





"사시邪視."






"사시?"

"잘 들어. 내 방 책상 서랍에 선글라스가 있으니까 가져 와. 네 것까지 두 개."

"왜?"

"잔말말고 그냥 가져와."




나는 삼촌이 시키는 대로 선글라스를 가져 왔다.

삼촌은 떨리는 손으로 선글라스를 쓰고, 다시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선글라스 쓰고 이걸 봐."

주저하면서도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조금 흐릿하긴 하지만, 나무들 속에 있는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함에 휩싸였지만,

아까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녀석이 있는 곳은 아까 그 장소가 아니었다.

녀석은 흐물흐물 기묘한 춤을 추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시선만은 확실히 이 쪽을 향해 있는 상태로...




산을 내려 오고 있는 건가?!

설마... 여기로 오려는 건가?!










"oo야, 너 지금 오줌 나오냐?"

"뭐? 이 상황에 삼촌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오면, 부엌에 빈 페트병 있으니까, 거기다 오줌 좀 담아 와."

그렇게 말하고 삼촌은 1층으로 내려 갔다.

이런 상황에 소변을 볼 생각이 들지 않아서 나는 그저 멍하니 있었는데

몇 분 후, 삼촌이 페트 병에 노란 오줌을 담아 돌아 왔다.

"누고 싶어지면 여기다 담아."

그렇게 말하고 삼촌은 또 하나의 빈 페트병을 내밀었다.

"그보다.. 저게 대체 뭐야?"

"야마코... 아니,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랑 자주 산에 캠핑을 하러 갔는데...

아, 저 뒷산은 아니야.

산은 워낙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니까.

한 밤 중인데도 텐트 밖에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가 보면 아무도 없었어.

그럴 때 오줌을 뿌리면 신기하게도 그런 현상이 뚝 멈췄어."


그렇게 말하고 삼촌은 다시 한 번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몹시 괴로워 보였지만, 저 녀석을 관찰하는 것 같았다.



"저 녀석 말이야. 시속 몇 km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천천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어.

도중에 사라져서 안 보이긴 하지만, 틀림없이 여기로 향하고 있는 걸 거야."

"그러면 빨리 차 타고 돌아가자."

"아마 소용없을 거다. 저 녀석의 흥미를 돌리지 않으면, 어디까지라도 쫓아 올 거야.

저건 일종의 저주야.

사악한 시선이라고 쓰고 사시(邪視)라고 읽지."

"아까 말한 게 그거였구나. 그런데 삼촌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내가 일 때문에 북유럽에 잠시 머물렀을 때에 말이야... 

아니다, 일단 우리가 살게 되면 그 때 말해 줄게."


"살게 되면이라니... 저 녀석이 여기까지 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겠다는 거야?"

"아니, 맞이하러 가야지."




나는 여기 틀어박혀 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삼촌은 저 녀석이 이 곳으로 오기 전에 어떤 수를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기괴한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갈 바에는, 도망치는 게 훨씬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삼촌은 옛날부터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삼촌을 존경하고 있기에, 삼촌을 따르기로 했다.




선글라스, 페트 병, 가벼운 식량이 든 륙색, 쌍안경, 목제 배트, 회중 전등을 가지고

뒷산에 들어갔다.

어두워지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삼촌의 의지였다.

과연 저 녀석의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망원경 렌즈를 통해서가 아닌,

선글라스를 낀다고는 하지만 눈 앞에서 저 녀석을 버텨낼 수 있을까?

수많은 불안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뒷산이라고는 하지만, 꽤 넓었다.

쌍안경을 사용해 그 녀석을 찾아 헤맸다.

삼촌이 말하기를, 저 녀석은 우리를 목표로 삼아 이동하고 있을 테니

언젠가는 마주치게 될 거라고 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해가 지게 되면 위험하니,

별장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조금 트인 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흥미만 돌리면 돼... 관심만..."

"어떻게?"

"내 생각으로는, 우선 어떻게든 저 녀석 가까이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돼.

그런데 절대로 바로 쳐다보지는 마.

곁눈질로 봐. 무슨 말인 지 알지? 

직시하지 말고, 곁눈질로 위치를 파악해.

그 다음에 담아 둔 오줌을 뿌려.

그래도 안 된다면...

잘 들어.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녀석한테 성기를 내보여."


 

 

 

 

 

 



"뭐??"



"사시는 부정한 것을 싫어 해. 똥오줌이나 성기 같은 것.

그러니까 죽일 수는 없지만 그걸로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으면

우린 살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안 된다면?"

"......차를 타고 도망칠 수밖에 없어. "


나와 삼촌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바위에 앉아 묵묵히 기다렸다.

교대로 쌍안경을 보며.

시간은 4시를 지나 있었다.













"형, 일어나!"

내가 10살 때 사고로 죽은 남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일어나. 학교 지각한다?"

시끄러. 3분만 더 자자.







"형, 안 일어나면











죽 어!!!!"



 

 

 








헉 하며 깨어났다.

내가 자고 있었나?

말도 안 돼. 이렇게 무서운 상황과 긴장감 속에서 잠을 잤다니.

옆에 있던 삼촌을 보았다. 자고 있었다.

서둘러 깨웠다. 시계를 보니 5시 반이었다.

주위는 거의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식은 땀이 흘렀다.




"ㅇㅇ야, 들려?"

"뭐?"

"목소리... 노래인가?"


신경을 집중해 귀를 기울이자, 오른쪽 전방 몇 미터 쯤 앞에 있는 덤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점점 이 쪽으로 다가 온다.

민요 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다.

무슨 노래인 지 알 수 없지만, 기분 나쁜 높은 목소리였다.

너무 무서워서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몸서리치게 싫어 졌다.




"잘 들어!  발치만 비추는 거야!!"



삼촌이 그렇게 소리치고, 나는 회중전등으로 그 녀석이 나오려고 하는 덤불 아래쪽을 비추었다.


다리가 보였다.

한 올의 털도 없이, 이상할 정도로 하얗다.

온 몸을 비틀어 대면서 다가 온다.

순간, 머릿 속의 모든 생각이 멈췄다.






"아아아아악!!!!"





녀석이 자세를 낮추고 네 발로 기어서, 발치를 비추던 회중전등 불빛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쳐다보고 말았다.

아까와 같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이런 얼굴을 보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삼촌도 오열하고 있었다.
떨어뜨린 회중 전등이 녀석의 몸뚱이를 비추고 있다.
녀석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노래를 부르며 네 발로 기면서
마치,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가 온다.
오른 손에는 녹슨 열쇠를 쥐고.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릴까.

"♪♬♬♪"

삼촌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열하고 있던 삼촌은 넋을 잃은 것처럼 점퍼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쳐다 보았다.
이런 순간에 대체 뭐야.. 이제 곧 죽을 텐데...
나는 멍하니 삼촌을 바라 보았다.
아직도 전화기는 울리고 있다. 삼촌도 계속 전화기를 쳐다 보고 있다.

녀석이 내 쪽으로 다가 왔다.
공포감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죽는구나.

그 때 삼촌이 포효를 하며 땅에 떨어진 회중 전등을 집어
빠르게 나에게 다가 와 내 페트 병을 쥐었다.


"이 쪽 보지 마!! 녀석의 얼굴을 비출 거니까 눈 꼭 감아!!"

나는 정신없이 땅을 굴러 선글라스도 떨어뜨리고 머리를 감싸쥐며 눈을 감았다.

 

 

 

이 이후부터는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우선 녀석의 얼굴을 비추고 곁눈질로 위치를 파악했다.

조금 더러운 이야기이지만,

내 페트병을 입에 대고 오줌을 입에 머금어

전등으로 녀석의 얼굴을 비춘 채로 녀석에게 오줌을 뿜어 뱉는 순간 눈을 감았다.

녀석의 말 울음 소리같은 비명이 들렸다.

또 다시 입에 머금고 뱉고 또 뱉었다.

녀석의 눈에. 몇 번이고.




아까와는 조금 다른, 조금 더 높은 녀석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직 여기에 있다!

초조해진 삼촌은 바지와 팬티를 벗고 자신의 성기를 전등으로 비추었다고 한다.

아마 녀석은 그걸 봤을 것이다.

무슨 말인 지는 모르겠지만, 섬뜩한 저주같은 원한의 말을 내뱉고는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

나는 그 때서야 얼굴을 들었다.

삼촌의 전등이 녀석의 등을 비추고 있었다.


녀석이 뒤돌아서 가는 그 순간에도 나는 공포감을 느꼈다.


녀석은 물러가는 그 순간까지도

기분 나쁜 노래를 부르고, 온 몸을 비틀며 천천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지팡이를 짚은 늙은 노인이 걸어가는 속도로.





우리는 녀석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전등으로 녀석의 등을 비추며 바라 보고 있었다.

녀석이 언제 돌아 볼 지 알 수 없다는 공포를 견디며...

영원처럼 느껴지던 고통과 공포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녀석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별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안에 들어가 삼촌은 문 단속을 하고, 커피를 끓였다.

커피를 마시며 삼촌은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걸로 삼촌이 말했던 것처럼, 관심을 돌릴 수 있었던 걸까?"

"아마도."

 

 

 


삼촌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조금씩 천천히 사시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삼촌은 일 관계 상 해외에 나가는 일이 잦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말할 수 없지만, 소위 말하는 기술자이다.

삼촌이 북유럽의 어느 마을에 체류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현지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던, 통역도 가능했던 어느 남자 동료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동료는 삼촌을 인적 없는 골목으로 데려갔다.

삼촌은 '스트리퍼인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골목 안의 자그맣고 조금 허름한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집 안을 보게 된 삼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초라했지만, 집 안은 완전히 달랐다.

한 눈에 봐도 고급품처럼 보이는 융단, 항아리, 귀금속...

향긋한 향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집 안을 구경하면서 집 안 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 곳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상한 것은, 집 안인데도 남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동료에 의하면 '사시邪視'를 가진 자라고 했다.

'사시'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민간 전승, 즉 미신의 한 종류로

악의를 가지고 상대를 노려 보는 것으로, 상대에게 저주를 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블 아이(evil eye), 사안(邪眼), 마안(魔眼)이라고도 한다.

사시의 힘의 정도에 따라, 병에 걸려 점차 쇠약해 지고 이르러는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삼촌은 반쯤 장난으로 그 설명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무슨 마술사이겠거니 하고.

앉아 있던 남자가 동료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무래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니, 그 힘을 조금만 체험시켜 주겠노라고.

삼촌은 재미로 한 번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승낙했다.

또 다시 남자가 동료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금부터 당신을 결박하겠소. 
오해하진 마시오. 당신은 날뛰려 할 것이오.
그만큼 내 힘이 강하기 때문이오.

정말 잠깐의 한 순간동안, 나는 내 눈으로 당신을 바라 볼 것이오.
그저 그것 뿐."













삼촌은 아마도 눈에 어떤 세공이라도 해 놓은 게 아닌가 짐작했다.

정말로 눈이 보기 흉하게 찌그러져 있는 걸 지도 모르고,

컬러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곳에 나는 향에 이상한 환각제가 들어 있나.

결박당하는 건 좀 꺼림칙했지만, 그 동료를 신뢰하고 있었기에 순순히 응했다.

의자에 묶인 삼촌에게 남자가 다가 왔다.

동료는 등을 돌리고 있다.

남자는 조용히 선글라스를 벗고, 삼촌을 내려다 보았다.





















"정말로 그 남자의 눈을 봤을 때,

오늘 그 녀석을 봤을 때와 같은 심정이 됐었어."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삼촌은 말을 이었다.



"그걸 본 순간, 죽고 싶어 졌지.

눈 자체는 아주 평범한 눈이었는데 말이야.

어쨌든 이 세상 모든 게 싫어 졌어.

쳐다 본 건 정말로 1,2초 정도밖에 안 됐었는데.

무슨 암시나 최면같은 그런 레벨이 아니었어."




동료가 말하길, 그 남자는 돈만 많이 준다면 사람도 죽인다고 했다.

현지 마피아들의 항쟁에도 이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삼촌이 귀국하기 약 1주일 전, 그 남자가 죽었다고 한다.

소속 조직의 체면을 생각지 않고 일을 했다는 이유로, 제거되었다.

남자는 사창가 조그만 집에서 의자에 묶인 채 죽어 있었다.

바닥에는 똥오줌이 어지러이 흩뜨려져 있었다.

남자는 엄청난 괴력으로 팔을 묶은 줄을 풀고, 

자신의 양 쪽 안구를 도려내어 죽었다고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시는 부정한 것을 싫어해.

오물에 둘러싸여 억지로 스트리퍼의 성행위라도 보게 된 걸까."



나는 말 한 마디 할 기력도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까의 그 괴물도, 사시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까.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삼촌이 말을 이었다.

 

 




"녀석이 정말로 괴물이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키워진 사람이었는 지는 몰라.

그저, 그 녀석은 도망치기만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았어.

그래서 죽을 힘으로 맞서 싸웠어.

갓파도 사람의 침을 싫어한다고 하잖아.

독경이나 부적보다도 사람의 몸이 그런 것들에겐 더 유효한 걸 지도 몰라."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남동생 꿈을 꿨던 게 생각나 삼촌에게 말했다.

동생이 구해 준 게 아닐까 하고.

삼촌은 그 이야기를 듣고 1분 정도 말이 없었다.


"그럴 지도 모르겠다. OO는 너보다 야무진 애였지.

내 휴대폰이 울렸던 거 기억 나?

그거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걸려 온 거였어.

그런데 이 깊은 산 속에서 휴대폰이 터질 리가 없지.

이것 봐. 안테나가 하나도 안 뜨잖아?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이제 어서 집으로 가자. 이 별장도 팔아 버릴 거야.

빨리 여자친구한테 전화도 하고 싶다."


삼촌은 쑥스러워하며 웃고는, 커피를 깨끗이 다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 섰다.












    
2011/05/13 (Fri)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당시, 나는 어느 지방의 싸구려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어느 여자 한 명과 사귀며 함께 동거를 했다.
 
그녀의 이름을 '하루미'라고 칭하겠다.
 
하루미는 도박을 좋아했다. 파칭코, 경정, 경륜, 포커, 마작 등.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번번이 지기만 했다.
 
예상하셨겠지만, 곧 빚더미를 떠안게 되었다.
 
하지만 하루미는 어떻게든 일을 하며 갚으려고 했다.
 
 
 
동거하기 시작한 지 2년 쯤 되었을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하루미는 사채에 손을 대고 말았다.
 
어느 날 밤, 집으로 두 명의 남자가 찾아왔다. 척 봐도 야쿠자였다.
 
돈을 못 갚으면 몸 파는 곳으로 넘겨 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렇지만 하루미는 1주일,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하며 열심히 일을 했다.
 
비겁하다고 여기실 지는 모르지만,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야쿠자와 관련되는 건 질색이다.
 
지금은 나를 비난할 지도 모르지만, 여러분들도 나같은 상황에 처하면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밤, 평소처럼 야쿠자들이 집으로 쳐들어 왔다.
 
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좀 높아 보이는 간부 급 야쿠자가 온 것이다.
 
한 차례 하루미와 이야기를 나눈 후, 성큼성큼 나에게로 왔다.
 
"저게 니 여자 맞냐?"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어, 그렇다고 했다.
 
"그럼 니가 저 여자 빚 대신 갚을 거냐?"
 
그 당시 하루미의 빚은 천만 엔 가까이 부풀어 있었다. 대신 갚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무리라고 말했다.
 
"그러면 저 여자는 내가 가져간다."
 
나에게 해만 안 끼친다면 상관없다고 체념했다.
 
사실, 하루미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몸만 원했을 뿐.
 
그런데 그 남자가 이상한 말을 했다.
 
"저 여자에 대해서는 앞으로 잊어버려.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는다고 맹세할 수 있으면, 이걸 받아."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딱 백만 엔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역시 야쿠자에게서 받는 돈은 찜찜했다.
 
잘못하면 나중에 말도 안 되는 거액의 이자를 붙여 갚으라고 협박할 지도 모른다.
 
거절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부하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받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
 
마지못해 돈을 받았다.
 
"혹시 이후에 오늘 일을 그 누구에게라도 발설하면, 

니가 세상 어디에 숨는다고 해도 찾아내서 죽일 거다."
 
나는 막연히, 하루미가 매춘업소로 팔려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일에 쓰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훨씬 비참한 일에.
 
 
 
 
 
 
 
 
 
 
하루미는 어느 정도의 옷과 잡화만 여행가방에 쑤셔 담고는, 그대로 끌려 갔다.
 
집을 나설 때, 하루미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쓰윽 나갔다.
 
나는 혼자 남겨진 집에 당분간 멍하니 서 있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가게를 그만두고 멀리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쿠자가 알고 있는 집에 더 이상 살기 싫었다.
 
문득 하루미가 쓰고 있던 화장대에 눈길이 갔다.
 
리본이 달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열어 보니, 내가 예전부터 갖고 싶어했던 시계가 들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이 내 생일이었다.
 
눈물이 났다.
 
그 때서야 비로소, 내가 하루미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하루미를 되찾으러 야쿠자에게 쳐들어 갈 수는 없었다.
 
이건 현실이고,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날, 바로 가게를 그만 둔 나는 백만 엔을 자금으로 해서 이사하기로 했다.
 
가능한 한 먼 곳으로 가고 싶었기에, 당시 큐슈에 살고 있던 나는 홋카이도로 이사했다.
 
일단 살 곳이 정해졌고, 급한 불을 끈 나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물장사는 이제 지긋지긋했기에, 올빼미형 인간인 나에게 딱 맞는 야간 경비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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