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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의 모든 이야기는 양심없는 무단 수집을 거부합니다. ⓒMur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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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3 (S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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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9 (Mon)
벌써 몇십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던 어느 여름 날.
 
할아버지 댁은 킨키 지방의 어느 시골이었는데
 
매년 여름이 되면 온 가족이 할아버지 댁에 가곤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몹시 귀여워해 주셨고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에 설탕을 뿌린 간식을 주셨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는 이웃의 동갑내기 친구 H와 H의 남동생과 함께 놀았다.
 
들판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숲에서 도토리를 줍고
 
공원에서 매실을 따며 놀곤 했는데
 
단 한 곳. 들어가서는 안되는 장소가 있었다.
 
그 곳은 숲을 조금 빠져 나간 곳에 있는
 
높고 단단한 담장에 둘러싸인 부지였다.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라고는 해도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으니 들어갈 수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거기에는 가까이 가면 안 된다. 
 
그 안에는 도깨비가 있는데
 
들어가면 천벌을 받는단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신신당부를 하셔서
 
무의식적으로 겁이 나서 나는 가까이 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셋은 그 부지를 피해서 놀았는데
 
그 날은 조금 달랐다.
 
 
 
"있지, 저 안에 들어가 보지 않을래?"
 
H가 손가락으로 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어? 저기에 가면 안 된다는 거 너도 알잖아?"
 
나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지만 H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괜찮다니까. 이 근처에서는 질릴 정도로 많이 놀아봤는데
 
아직 저기만 못 들어가 봤잖아."
 
중학생이 되어서 조금 머리가 굵어져서 그런지
 
이제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건 다 미신이야 미신. 
 
우리를 저기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을만큼
 
엄청난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 거 아냐?"
 
H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가지 말자. 자물쇠까지 잠겨 있고 말이야."
 
내가 주저했더니 H는 마치 기다렸다는듯 대답했다.
 
"그런 건 다 녹슬어서 금방 부서져. 
 
너... 겁나냐?"
 
나도 여기서 빼고 싶지는 않아서 큰소리를 쳤다.
 
"......알겠어.
 
대신 난 문 앞까지만 같이 가 줄 테니까
 
안에는 너 혼자 갔다 와. 알겠지?"
 
그 때 다섯 살이었던 H의 동생은 검지손가락을 열심히 빨아대고 있었다.
 
 
 
 
H는 바로 근처에 있던 돌을 주워 자물쇠를 부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오래된 철제 자물쇠였는데
 
녹이 슬어 이미 퍼석퍼석해진 상태였다.
 
나도 내심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문.
 
대체 그 안에는 뭐가 있는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었다.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으로
 
H가 자물쇠를 부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H가 두 손으로 온 몸의 힘을 실어 
 
돌로 자물쇠를 다섯 번 정도 내리치자
 
금이 가더니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H는 돌을 내려두고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그럼 열어본다?"
 
천천히 두 손으로 문을 밀었다.
 
문 안의 풍경을 보고 H와 나는 온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하얀 모래가 흩뿌려져 있고
 
한가운데에는 매우 낡은 신사가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몹시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야!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이제 가자!"
 
H에게 소리쳤다.
 
H의 동생은 울어대기 시작했다.
 
H가 떨면서도 하얀 모래 위에 발을 들인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분위기가 변했다기보다는 
 
내 몸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에 짓눌려 움직일 수 없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고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리고 이내
 
 
 
 
"후후훗...후훗.."
 
 
어린 아이인지 어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던 그 순간
 
내 몸이 먼저 위험을 감지한 건지
 
미칠 것만 같은 공포가 온 몸 구석구석에 퍼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빽빽 울어대는 H의 동생의 팔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 집으로 갔다.
 
그 때 마침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그런 때에 나는 울어대는 H의 동생의 팔을 붙들고 땀에 흠뻑 젖어 뛰어 들어온 것이다.
 
한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지만
 
하악하악 숨을 헐떡이는 나를 보고는
 
평소에는 인자하시던 할아버지가 
 
"너 이 녀석! 그 안에 들어간 거냐?!
이 멍청한 녀석같으니라고!!"
 
고함을 치시며 나를 때리려 하셨다.
 
그 때까지 할아버지는 나에게 화를 내신 적이 없었기에
 
나는 할아버지를 보고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나서 할아버지를 말렸고
 
조금 진정이 된 후에 자초지종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 뒤의 일이 기묘헀다.
 
 
마을 사람들과 지역 경찰 모두 무표정하게 슬픈 얼굴로
 
형식적으로 H의 수색 작업을 마치고는
 
곧장 나와 부모님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 H의 할머니가
 
"H가....우리 H가.. 손놀이공<참고 사진>이 되었구나..."
 
오열하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있다.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할아버지 댁에는 가지 않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날 이후로 변한 것이 있다.
 
아주 가끔. 몹시 꺼림칙한 꿈을 꾸게 되었다.
 
 



 
 
짙게 안개가 끼어 있는 그 부지 안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 온다.
 
무의식적으로 그 쪽을 쳐다보면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기모노를 입은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고
 
아이는 땅에 공을 통통 튀기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웃고 있는 건 그 아이가 아니라
 
아이가 튀기고 있는 사람의 머리라는 것을.












    




얼마만의 업뎃인지...
혹시나 기다리셨을 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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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7 (Wed)
 내 친구 중에 FN이라는 이니셜을 가진 녀석이 있었다.
 
짐작했을 지 모르겠는데 녀석은 외국인이다.
 
하지만 FN은 일본에 살았다.
 
녀석과 나는 오타쿠 동지였다.
 
둘 다 로봇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게라지 키트와 프라모델에도 둘 다 관심이 많았다.
 
특히 더 좋아했던 건 Heavy Gear였다.
 
그건 작아도 꽤 마음대로 만지기가 괜찮았다.
 
몸뚱이같은 것을 바꿔 끼워서 자신만의 멋진 Gear를 만들 수 있다.
 
취향이 이렇다보니 물론 둘 다 AC 시리즈도 빠삭했다.
 
최고의 친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취향이 같았다.
 
오버드 부스트와 오비트가 AC에 들어왔을 때에는
 
둘 다 밤을 꼬박 새워 각자 좋아하는 기체를 조립해 서로 자랑을 했는데
 
데칼은 제외하고 컬러링, 파트 선택이 전부 똑같았다.
 
마치 쌍둥이처럼.
 
분명 생판 남인데도 우리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4년 전쯤이었다.
 
윈도우 95가 아니면 작동되지 않는 Heavy Gear의 컴퓨터 게임을 손에 넣었다.
 
둘이서 돈을 모아 어렵사리 윈도우 95가 탑재되어 있는 중고 컴퓨터를 샀다.
 
그 FN이 작년에 자살을 했다.
 
그 이유는 어쩌면 꽤나 복잡하고 기괴하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FN은 자신의 부모님이 단순한 회사원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일본에도 진출해 있는 해외 거물 골동품 브로킹 회사의 매입 담당이었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어 보면
 
골동품에 거는 보험에도 손을 뻗쳐 해외 보험 회사 그룹의 총수 집안이었다.
 
CEO는 표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겉으로 나서지 않는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다.
 
FN이 어렸을 때엔 괜히 사치스럽게 키워서 오만하게 자라지 않도록
 
엄하게 키웠다고 한다.
 
버릇없는 아이로 크면 나중에 본인이 곤란해 질 테니
 
성인이 되고 나서 알려 준다는 교육방침이었다고 한다.
 
 







 
 
 
자살하기 한 달 전 쯤에 전화가 왔었다.
 
한밤중이었다.
 
FN의 아버지는 영어 억양이 섞인 일본어로
 
"빨리 와라. 지금 차를 보냈다."고 하는 것이었다.
 
 가 보니 FN의 부모님이 "어서 와라. 노부. 어서 가 줘."
 
조급하게 나를 FN의 방으로 안내했다.
 
 
 
 
 
 
소중히 여기던 콜렉션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다이캐스트 제(製) 피규어는 무사했지만
 
프라모델은 꽤 많이 망가져 있었다.
 
둘이서 함께 만든 게라지 키트인 헤르마이네는 머리가 깨져 있었다.
 
대체 무엇이 이 오타쿠 친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것일까.
 
벽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함께 샀던 컴퓨터도 부서져 있었다.
 
FN은 한창 의자를 휘두르며 벽을 부수고 있었다.




 
 
"F! 그걸로 나를 Hit 해 봐!"
 
이렇게 말했더니 FN은 나를 돌아보았다.
 
핏발 선 눈으로 나를 30초 가량 응시한 후
 
FN은 겨우 진정이 된 듯 했다.
 
FN이 진정한 뒤에 이야기를 들었다.



 
 
 
 
 
 
"파더가 말이야.
 
60억 달러 정도 되는 자산이 있대.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나보고 집안을 이어받으래."
 
 
 
뭐? 처음엔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했다.
 
프라모델도 엄청 많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왜 화를 내는지조차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이해가 되었다.




 
 
 
 
"그런 유치한 장난감같은 것들은 버리고
 
더 큰 꿈을 가져라.
 
돈만 있으면 등신대도 만들 수 있어.
 
물론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그걸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번 후라면 말이다.
 
광장에 등신대 로봇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
 
네가 좋아하는 견면(犬面) 로봇도
 
돈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FN에게는 분노의 도화선이 되었다.
 
솔직히 나도 화가 났다.
 
뭐?
 
그러면 우리가 좋아하는 이것들이 전부 쓰레기라는 건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산 소중한 전리품이다.
 
쓰레기가 아니다.
 
FN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공감이 되었다. 분했다.
 
다른 사람이 남긴 돈으로 몇 만 개를 산다고 해도 
 
틀림없이 짐덩어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FN은 진정한 후에 부서진 콜렉션을 보고서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교우관계는 청산해라.
 
특히 노부에게는 돈을 두둑히 주고 설득할 테니 안심하거라.
 
앞으로는 돈이 되는 대인 관계에 대해 배워라.
 
어른들의 인간관계를 가르쳐 주마."
 
 
 
이것은 FN의 부모님에게 직접 들은
 
FN이 자살하기 직전에 그들이 FN에게 한 말의 내용이다.
 
두 사람은 내가 FN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말싸움을 한 끝에 FN이 방에 틀어박혔다.
 
저녁 식사를 하라고 부르러 갔더니 FN은 이미 죽어 있었다.
 
FN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노부. 가장 소중한 너에게.

두 번째 이하로 소중한 것들을 모두 너에게 남긴다."
 
 
 
 
 
 
 
 
 
 
처음에는 FN의 부모님이 나를 몹시 원망했다.
 
나같은 오타쿠 친구가 FN과 가까이했다는 게 원인이라면서.
 
그렇지만 몇 년 동안 꾸준히 FN의 묘를 찾았더니
 
FN의 부모님이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운 FN의 모습이 그 곳에 있었다.
 
원더 페스티벌에서 유명한 제작자인 Y 씨의 옆에 서있는 사진.
 
프로 모델러의 마음에 들어 그 사람의 작업장에 방문했을 때의 사진.
 
작업 현장을 찍은 사진.
 
너무도 소중하게 앨범 속에 갈무리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사진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 사진 속에서 FN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요즘들어 앨범을 보고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거짓말을 했다.
 
F는 아마 알고 있었겠지.
 
집 안에는 온통 거짓말쟁이뿐이라서 괴로웠을 거야.
 
그걸 빼앗으려고 했다. 내가 바보같았어.
 
우리들이 F를 죽인 거야."
 
 
 
 
 
 
그건 아니다.
 
그 때 나는 나름대로 즐거운 계획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다른 사람의 돈이라 해도
 
1000개를 1000명이 함께 만들면 즐거운 텐데.
 
우리들이 즐거워하는 이런 것들을
 
온 세상의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다는 꿈도 꿀 수 있다.
 
FN이라면 분명 손뼉을 쳐 주었을 것이다.
 
굿 아이디어라고 해 주었을 것이다.
 
착한 녀석이었으니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녀석다운 좋은 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족보다도 나를 더 믿어 주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녀석도 틀림없이 기뻐해 주었을 텐데.
 
FN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건 바로 나다.


 
 

 
FN의 부모님은 내가 FN과 닮았다는 이유로
 
나를 양자로 들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나는 몇 번이고 거절했다.
 
요즘은 매일같이 우리 집에 온다.
 
문을 쿵쿵 두드리기도 한다.
 
FN은 나에게 소중한 것을 준다고 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을 받을 수는 없다.
 
FN은 분명 자산가의 아들이라는 자리를 싫어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FN에게 용기를 주지 못했다.
 
그래서 FN의 콜렉션은 FN의 부모님에 그대로 있다.
 
방문 너머로 어서 나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벌써 반 년 이상 일하러 가지도 않았다.
 
집 주인은 내가 FN이라는 친한 친구를 잃어서
 
이상해 진 거라고 마음을 써 주고 있어서
 
집세를 체납해도 기다려 주고 있다.
 
가스비, 전기비, 인터넷 요금도 모두 지불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벌써 한 달 동안 물밖에 마시질 않았다.
 
 
 
 
 
 
 
 
방 구석에서 FN이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다.
 
나는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
 
이제서야 겨우 행복이 되돌아 왔으니까.
 
FN은 분명히 죽었다.
 
그런데도 참 대단하다.
 
죽어서도 내 곁으로 와 주었다.
 
밤에만 와 주기는 하지만
 
다시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다.
 
FN이 죽고 나서 나도 폐인이 되었다.
 
PS와 PS2도 부숴버렸지만
 
부서진 프라모델은 얼마든지 있다.
 
FN은 그것들을 고쳐 주고 있다.
 
Heavy Gear를 바꿔 끼우기만 해도 
 
앞으로 한참 재미있게 놀 수 있다.
 
도색이 끝난 것들을 늘어 세운 디오라마도
 
토대가 부서져 있긴 하지만
 
지면이 붕괴된 거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멋있다.
 
 
 
 
이런 일도 있는 거구나.
 
나를 소중히 여겨 주면
 
죽은 후에도 함께 있어 주는 구나.
 
FN과 함께 놀고 있으니 익숙한 사람들이 또 왔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
 
집 주인이 이제는 문을 열겠다고 한다.
 
거 참 귀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 F !? "
"저게 뭐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고 놀랐다.
 
나는 이상하게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부서진 부속품들을 손으로 꾹꾹 눌러 끼우고 있는 FN을 도왔다.
 
접착제를 묻혀 주었다.
 
 
 
"나라면 노부를 방에 가둬 두지 않아."
 
 
뒤에서 희미하게 영어 억양이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FN이 프라모델을 고치는 걸 도와주고 있는데 말이다.
 
 
 
"애시당초 내가 콜렉션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러고보니 그렇다.
 
FN이 내 방에 오면 늘 오자마자 콜렉션을 가져 오라고 하곤 했다.
 
하긴 그 녀석이 귀신이 되었다면 콜렉션이 있는 곳에서 튀어 나왔을 것이다.
 
FN은 내 뒤에 있다.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건 뭐지?
 
머리가 맑아졌다.
 
FN이라고 생각했던 이것은 머리가 금발이 아니었다.
 
검은 머리였다.
 
온 몸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다.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boy, 길동무가 필요하면 나랑 같이 가자."
 
 
 
뒤에서 FN이 스윽 나타났다.
 
나와 흐릿한 FN을 번갈아 쳐다 본 후에
 
아이는 FN이 내민 손을 잡았다.
 
아이와 함께 FN은 바닥으로 스윽 사라져갔다.
 
 
 
나는 불을 켰다.
 
엉망진창인 방이 보였다.
 
고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프라모델은 모두 심하게 부셔져 있었다.
 
내 두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고
 
가장 새로운 상처에는 플라스틱 파편이 꽂혀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모두 흠칫 놀랐다.
 
FN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서는 꽈악 안아 주었다.
 
 
"FN이 왔었던 것 같습니다..."
 
"노부. 얼굴이 말이 아니구나."
 
"구급차 부를까요?"
 
집 주인과 F의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조잡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외국인 부부에게 양자로 가 있는 내 형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아니다.
 
거짓말은 나쁜 거지.
 
아직 완전히 헤어나오질 못했다.
 
남일처럼 여기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남일이었으면 좋겠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는 결국 FN에게 모든 것을 다 받기만 했다.
 
갚을 수도 없다.
 
그게 너무도 괴롭다.
 
 
 
 
 
 
 
 
 
 
 
 
 
 
 

 

 
 
    

으헝헝헝.. 너무 감동적이야...
그런데 오덕용어도 너무 번역하기 힘들어...

 
2011/07/24 (Sun)
 우리 집은 어떤 종교같은 것을 믿고 있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꼭 전차로 1시간 정도가 걸리는
 
회관같은 곳에 가곤 했다.
 
다들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어서
 
회관에 들어가면 비슷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다들 서로 서먹서먹해하며 대화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얼 하는고 하니 
 
매번 대표 선생님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 함께 신단을 향해 반야심경과 육근청정을 외웠다.
 
그 때문인지 나는 다섯 살 때에 그 두 가지를 줄줄 외곤 했다.
 
그 모임이 끝날 무렵에는 아이들에게 달콤한 사탕을 주었는데
 
그 한 알을 위해 왕복 2 시간이나 들여 참여하는 것은 솔직히 괴로웠다.
 
 



 
그런데 8살 때 그 선생님(?)이 나와 남동생을 영시(靈視)해 준 적이 있다.
 
남동생에게서는 흉폭하게 날뛰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선생님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붙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사실 남동생은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난폭해지고 고집도 센데
 
집 밖에 나가면 멀쩡하게 굴곤 했다.

지금은 대학도 중퇴하고 그냥저냥 4년 정도 집 안에 처박혀 살고 있다.

나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휩쓸리기 쉬우니 주의하고 

살아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도 따를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엄청난 능력은 없으니 귀신을 보지는 않을 것이고

귀신들이 해코지도 하지 않을 것이니 별 영향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창시절에는 얕은 관계일 지는 몰라도 친구도 많은 편이었고
 
보증을 서 달라는 연락을 받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한 가지 더 들은 말이 있다.
 
 
 
12간지가 두 번 돌아 올 무렵. 즉 24살이 될 때면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최근까지만 해도 나에게 숨겨왔는데
 
어제 할머니와 통화를 하다 알게 되었다.
 
통화 내용은 작년부터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한밤 중에 자고 있으면 갑자기 어딘가에서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도쿄에서 독립해 살기 시작한지 5년.
 
5년간 계속 한 곳에 살고 있으니 갑작스런 지역 축제일 리도 없다.
 
낮은 음으로 둥.둥. 
 
아침이 밝을 때까지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튿 날이었나 이틀 후에 동네 게시판을 보면
 
XX씨의 부고 소식이 적혀 있었다.
 
아니면 지나가다 상중(喪中)이라는 글자가 적힌 대문을 발견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어제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아.. 함께 있던 아이가 이젠 돌아갔나 보구나..."하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여쭤 보니
 
"너에게는 여동생이 있단다."
 
"네? 나한텐 남동생 뿐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네 살 때 아범이 잠시 바람을 피웠을 때 아이가 생겼단다.
 그런데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해서 아이는 지우게 되었는데..."
 
그 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지운 아이는 공양을 했다고 하고
 
아무 일 없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몇 년 뒤 영시를 받았을 때
 
내 뒤에 그 아이의 영혼이 보였다고 한다.
 
선생님이 말하길
 
 
 
"몹시 강한 영력을 가진 아이인데 OO(나)의 감정에 끌려 함께 있는 모양입니다.
 
스무 살이 되면 이 아이는 OO에게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 하니 안심해도 좋을 듯 합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제 성장해서 4살이 되었으니
 
16년 후(내가 24살 때)에 그 영향때문에
 
OO가 저 쪽 세계를 조금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갑자기 잠이 들어서 당시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작년에 스물 넷이 되고부터 한밤 중에 생겼던 일들은
 
아마도 그게 원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말하길 그 아이가 나와 함꼐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태어났어야 했을 세상을 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나는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신기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저 그 아이가 나에게 붙어 있는 이유를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었다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올 초에 친구들과 여행을 간 신사나
 
여자친구와 함께 갔던 고베의 아름다운 야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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